차(茶)는 기호음료다. 음료는 역시 맛이 먼저다. 맛은 달다, 쓰다, 시다, 맵다 등 뚜렷한 언어적 표현으로 묘사된다. 우리말은 특히 감각에 대한 언어가 유독 다른 언어들에 비해 발달한 것 같다. 달착지근하다, 시큼하다, 담백하다 등 얼핏 보면 비슷한 의미들이 다양하게 변형되어 사용되는 듯하다.

당신은 차를 무슨 맛으로 마시는가? 필연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이다. 요즘에는 차의 종류가 워낙 다양하니 과일향, 초코향 등 첨가되는 향과 맛에 의해 차의 맛이 응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홍차와 녹차처럼 잎을 통해 우러나는 고유(여기서는 있는 재료 그대로라는 의미)의 차들은 수 백, 수 천 년 간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에도 아이러니하게도 그 맛을 묘사하는 언어적 표현이 그다지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차다, 쓰다, 달다, 시다’ 등 너무나 단편적인 표현으로는 그 맛의 다름을 상호 구분하기도 어렵고, 한계도 있어 보인다.

저자는 바로 당연하고도 단순한 이 질문을 흥미롭게 던짐으로써 한국에서 오랜 기간 사랑받아 온 차, 그 중에서도 녹차 잎으로 만든 차(e.g. 작설차)의 근원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 첫 장부터 한국, 중국, 일본 등 오랜 차인들의 저서들을 통해 그 맛의 ‘표현’들을 탐색한다. 육우, 이규보, 센리큐 등 시인이자, 종교인이자, 당대 저명한 차인들의 이름이 열거된다. 그들은 차 애호가였는데, 그들이 작성한 문헌에는 차를 마시는 의태어와 맛의 표현들이 있다.

그들의 문헌을 살펴보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표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표현들이 조금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그 맛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언어의 한계 때문일까? 맛이 어떤지, 궁극적으로 차를 왜 마시는지 더욱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다만 오히려 그들은 차를 마신 뒤 맑아지는 정신에 주목하는 표현들을 더욱 강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그들의 종교, 신념, 철학 등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저자는, 이를 통해 동서양 철학자들의 문헌을 부지런히 오가며 그 철학의 근본에는 존재와 무(사라짐)의 구분, 그리고 그 경계에 대해 과거의 차인들과 함께 사유한다. 그 사유는 이내 하나의 공통점. ‘無, 사라짐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이로써 이 책은 음료에 대한 단순한 질문에서 동서고금을 오간 다양한 철학, 종교, 미학에 관한 문헌을 재미있게 인용하면서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곧, 한 편의 종합 교양서와 같아 지적인 포만감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차가 전래된 이래 한반도에서는 (선)불교인, 사대부 등으로 그 향유 문화가 이어졌다. 부족한 본인의 배경지식을 가미하자면, 차는 조선 시대에 들어 이른바 찻사발(다완)의 대가들인 도공들을 만나며 화룡점정을 찍는 듯하다,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사실상 그 명맥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가는 상황에 이르렀다. 여러 차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경상남도 하동군 다솔사를 거점으로 효당 스님(1904-1979)이 각고의 노력으로 그 철학과 예(禮)가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게 많은 기여를 했다고 한다(물론, 차인에도 소위 계파가 많아 여러 주장들과 인명이 등장할 것이다). 본인은 문외한이라 아직 그 깊이를 감히 가늠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현재 한국에는 많은 차인들이 모임을 형성해 차를 연구하고 있으며 심지어 대학원 과정도 존재한다. 다만 필자의 짧은 경험에서, 그들의 연구는 ‘차란 무슨 (물리적인) 음료이고, 어떻게 예의를 갖추어 마실 것인가?’ 즉, 대부분 조선 사대부들이 손님들을 맞이하며 내어준 차와 찻상에 대한 재연과 관심에 국한돼 있다는 점이 늘 아쉬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그 누구도 감히 건들지 않았던 차에 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짐으로써 다시 한 번 거대 담론을 일으키는 커다란 시도라고 호평할 수 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전반부에서 발견한 차의 철학적, 영성적 의미가 과연 일본과 한국의 차실공간(차를 마시던 공간)에 어떻게 구현됐는지를 보여준다. 우연의 일치일까? 당연한 이치일까? 오랜 시절 차를 마셔온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차인들의 철학적 사유는 그들이 즐겨 마시던 차와 그 공간에서도 잘 나타난다. 다만, 시간이 지나며 분화된 일본과 한국의 차실공간은 물리적인 차이점도 발견할 수 있어 흥미롭다. 예컨대, 한국의 건축의 기본적인 기조인 자연과의 조화, 물아일체의 의식이 수 천 년 동안 어떻게 전해지며 그 특색을 이루었는지 현재 남아있는 건축물들을 통해 비교해볼 수 있다. 일본 차실공간에 대한 탐구 또한 넓은 범주의 건축에서 차실공간으로 압축해가며 그 공통된 특색과 차실공간에서 구현된 차인들의 의도를 풀이한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은 한국과 일본의 차실에 담긴 정신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 내용은 스포일러에 해당하니 일독을 권하며 직접 독자들께서 찾아보시라 권해본다.

이 책의 주요 구성인 1) 차를 마시는 행위와 맛에 담긴 차인들의 철학, 2) 그 철학이 구현된 차실 공간을 완독하고 드는 생각은 “도대체 조상들은 음료 하나 마시는데도 이토록 정성과 정신을 쏟은 걸까?”라는 감탄과 경이로움이다. 그것이 곧 우리 문화의 한 면이 된 것이다. 문화는 고로 위대한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대충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는 듯 차 한 모금을 입속에 털어넣기 바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다수가 향유한 그 정신을 21세기의 우리는 경시할 수 없으며, 이 또한 우리가 지키거나 계승할 가치가 있는 무형의 정신 유산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저자의 글을 일부 발췌하여 독자들께 이 책의 일독을 권해본다. 흔히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듣고, “아는 것이 힘이다”고 말한다. 차라는 하나의 음료를 100년, 1000년 전 그 모습 그대로 즐겨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선조들의 미적 감각과 그들의 풍류를 엿보며 다양성을 즐긴다는 차원에서, 혹은 그들의 높은 정신적 수준과 철학을 통해 ‘한 없이 가벼워진 지금의 정신’을 채운다는 차원에서 재미있게 관찰해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아닐까? 우리도 이제 차에 대해 새롭게 알고 마셔본다면 그 맛이 더욱 ‘달거나’, ‘좋지’ 아니할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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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음료이고 음식물의 한 종류이며 달고, 쓰고, 시고, 짜다는 느낌을 혀의 자극을 통해 뇌에서 느끼게 되는 미각의 세계에 먼저 속해 있다는 것이다…(중략)…차인들도 시다, 쓰다는 미각에 관련된 표현을 하기는 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단순히 미각의 세계를 다룬 것은 아니었으며, 더구나 요리 방법을 논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중략)…고려 중엽의 유명한 차인이자 대문장가였던 이규보의 시에 묘사된 차에 대한 다른 표현을 살펴보면 형이상학의 철학적 주제어를 사용하였으며, 순수한 차의 에 관한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차를 마심으로써 의 세계로 진입케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한데, 단지 맛을 지닌 음료의 한 가지인 차가 어떻게 그 길로 인도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고 읽는 이로 하여금 단지 건너갈 수 없는 언어도단의 깊은 골만 느끼게 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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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정신은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에고(ego)의 돌연한 사라짐을 통한 참 나의 자각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차 마심은 형상적 라는 것이 전혀 영원하지 않고 곧 죽어 없어질 존재라는 사실을 찻물과 맛의 홀연한 사라짐을 통해 구체적으로 일깨우는 철학적 행위였다. 입속에서 느껴지는 쓴맛의 사라짐, 즉 죽음 혹은 고통은 단지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더 큰 차원의 탄생인 구원이자 부활임을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차 마심의 의미는 더 큰 무한차원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으므로 세상살이에 집착하여 일희일비할 이유가 없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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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실 건축 공간은 현대인들이 생각하듯 단지 방의 내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건축물과 외부 공간을 포함한 영역 전체를 포괄하여 상정하여야 한다…(중략)…한국과 일본의 차실 공간의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중략)…조금 더 구체성을 띠고 말하자면, 중심에 시공간이 사라지는 궁극의 점으로서의 차실이 있으며 그 점을 중심으로 외곽에 위계적 영역이 중층적으로 펼쳐지는 공간. 공간도 시간도 사라지는 것이라면 유한한 형태일 뿐이며, 유형의 것이 점차 압축되어 작은 찻잔의 공간으로 응축된 후 목 넘김으로 말미암아 홀연히 사라짐으로써 유형의 차 공간은 무형의 것이 된다.

#차선공간

#문철수작가

#명문당출판사

서평 작성자: 필명 자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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