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왜 학생들의 마음을 얻으려 하는가?”


어떤 유형의 선생님이든 저마다 가르침에 임하는 고유한 방식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극히 공적이고 비즈니스 적인 관계를 학생들과 맺으려는 유형이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부류다. 어떤 이들은 선생님으로서 역할보다는 특정 이익을 더 중요시한다. 공교육이라면 안정적인 일자리라는 이익을, 사교육이라면 더 높은 경제적 이익을 우성 시 하는 유형이다. 또 어떤 사람은 어떠한 일보다도 학생들과의 유대 관계를 더 중요시한다. 서술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교육 현장에 있다.


어설프지만 ‘선생’이 되었으니 이왕 일을 하는 김에 나도 학생들의 마음을 얻고 싶었다. 모 대학 입시 기숙학원 수학 조교로서 두 살 터울의 동생들로부터 선생님 호칭을 듣는 것이 처음에는 익숙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형, 오빠, 혹은 선생님을 번갈아 듣게 되었고, 결국엔 이 모두가 되어버린다. 아니, 모두가 되고 싶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 생애 첫 사회생활이었던 조교 생활이 특별했기 때문이다. 이 아르바이트는, 내가 뜨겁게 공부했던 모든 것을 다시 다른 누군가를 위해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없는 희열감을 안겼다. 신기하지 않은가? 지금까지 누군가로부터 배우기만 했던 내가 역으로 가르친다는 것이! 모든 순간들이 재미있었다. 나에게 ‘선생님! 선생님!’ 부르며 다가오는 아이들을 보니 신기했다. 나를 지속적으로 찾아주는 학생들이 너무나 고마웠고 함께 공부하며 바라본 그들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게 보였다.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내 설명을 경청해가며 바스락바스락 연필로 문제를 조금씩 풀어가는 그 모습이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오글거리지만 특별하고도 소중한 인연을 만드는 것, 그것이 어느새 그 곳에서의 목표가 되어있었다.

좋은 선생님의 두 번째 철학으로 나는 ‘작은 배려’, 혹은 ‘작은 기억’을 꼽겠다. 나는 학생들과 마주 앉아 모르는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거나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 남들보다 작은 정성을 조금 더 얹었다. 그 결과, 언젠가부터 우리반을 넘어 다른 반으로 내 이름이 퍼져나가며 학생들 입에 오르락내리락 했다.


무엇이 달랐길래?

수학에는 원칙과 원리가 있다. 대단히 논리적이기에 ‘그냥 이렇다’라는 식의 설명은 있을 수 없다.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에 대답해줄 수 있는 방향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그 과정을 빼먹지 않고 잘 설명해줄 수 있느냐가 곧 학생들의 눈높이에 내가 맞추고 있는지 척도가 된다. 사실 나는 배운 대로, 스스로 공부한 대로 아이들에게 알려줬을 뿐이다. 가능한 그들의 입장을 고려해 ‘쉬운 언어’를 사용했을 뿐이다. 가장 신경 쓴 것은 ‘역지사지’의 입장으로 끊임없이 회귀하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것과 그들이 아는 것은 다르다. 내 손으로 푸는 문제지만 그들의 눈높이에서 풀어져야 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단순히 그런 기술적인 것에만 반응하지 않는 것 같다. 여기까지가 첫 번째 연재 글에서 언급한 실력의 요소다. 실력이 있으면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은 생길지 몰라도 그 사람에게 정서적으로 의지할 정도로 상대방에 대한 신뢰는 생기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헌신해주는 사람에게 인간은 크고 작은 고마움을 느낀다. 고마움을 느끼면 작용 반작용의 법칙처럼 자신도 보답하고 싶은 것이 보통 사람의 심리다. 일을 하다 보면 매일 수백 문제를 즉석에서 풀어주다 보니 종종 매끄럽게 풀어주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단순히 “잘 모르겠다, 다른 거 물어봐”라고 말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언제나 일과가 끝난 뒤 혹은 쉬는 시간 중간에 그 문제들을 다시 풀어보았다. 내가 끝내 풀지 못한다면 다른 조교 친구들에게 물어서라도 꼭 풀어냈다. 친구들이 풀어준 문제는 다시 내가 체득한 뒤 학생들에게 쉬운 언어로 전달했다. 한 명 한 명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장 자크 루소는 『에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학생의 질문을 회피하는 선생이 어디 있을 것이며, 답변이 요령 있게 전달되지 못했다 해서 그 잘못을 인정하는 선생이 어디 있겠는가?… 스스럼없이 그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그러면)… 나의 가르침은 항상 정확한 것으로 인식되어 학생에게 믿음을 줌은 물론, 그렇지 않은 선생들과 비교됨으로써 더 큰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돋을새김, 1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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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윈터스쿨에서 5주간 매일 6-7시간 동안 일을 했지만, 매일 우리 반 30여 명 질문 모두를 받아줄 수 없었다. 반면 학생들은 한 번 질의응답에 물꼬를 튼 뒤 효능과 편리성 덕분에 더 많은 질의응답에 갈증을 느낀다. 마치 중독된 듯하다. 제한된 시간으로 인해 선착순 질문 신청에서 탈락한 아이들에게 나는 힘이 닿는 대로 A4용지에 풀이과정과 구두로 했어야 할 설명을 자세히 적어 반으로 배달해줬다. 쉬는 시간 아이들을 지나가다 마주치면 인사와 함께 말을 건넸다.

“(학생의 이름을 부르며) 내가 아까 보낸 거 이해했어? 이해 안 되는 부분은 없고?”

나는 단지 더 많은 질문을 받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정성껏 색깔펜을 써가며 해설지를 만들어줬을 뿐인데 학생들은 그것들을 받았을 때 이해를 했고 못했고를 떠나서, 자기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쏟아주는 내 작은 정성에 작은 감동을 받았다. 결국 비법은 따로 없다. 작은 부분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많은 학생 중에,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며 본인도 잊고 지나갈 일을 상대가 잊지 않는다면, 별 것 아닌 듯해도 큰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게 해 준다. 자신이 존중받고 있음을 느끼며 자신이 중요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렇게 마음을 사로잡는 나의 방법은 정말 간단한 부분에서 시작했다.

사실 그 당시에는 처세의 일환에서 혹은 어떤 계산된 목적이 있어 행동에 옮긴 것은 딱히 없었다. 나는 그 정도로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이렇게 해줘야 할 것 같아서, 그냥 그렇게 하면 더 좋아할 것 같아서 해주었을 뿐이다. 그 시간에 임하는 내가 즐거워서, 행복을 느껴서 가능했다.

단 하나의 단점이라면 본인은 조금 피곤해질 수 있다. 나 또한 20대 초반 단기간 일을 했기에 체력이 남아 있어서 혹은 진정한 사회생활의 고충을 몰라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힘들지 않았다. 내가 그 학생들에게 주는 만큼 그 이상 받았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힘겨워하는 그들을 위로해주기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었더니 어느새 나의 내면 또한 위로 받고 치유 받았다. 이런 점에서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진심을 다하는 것은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닌 듯하다.

-필명 자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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