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선생님이란 누구일까?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과연 정답이 존재하기는 할까? 인간 사회에서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기에 어떤 것이 확고하게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명쾌한 철학적 고찰을 할 자신감이 충만하지 않다. 솔직히 내 역량은 이미 다른 사람들의 사유를 맛보기에도 벅차다. 그럼에도 젊은 날의 나는 호기롭게 온몸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탐구하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손쉬운 공부는 자연에서 배우는 것이다. 그 말은 즉, 경험적으로 터득하는 것이다.

​좋은 선생님이란 어떤 것인가? 주로 내가 사교육에서 잠시 대학생 멘토로 일하면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사유해보았다. 선생님, 특히 내가 경험해 보았던 학원 선생님이라면 공교육 선생님들에 비해 역할 범위가 좁다. 학교의 존재 목적은 학생의 교과 학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성, 인성 등을 배양하며 사회의 영속을 위한 구성원을 길러내는 공식 사회화 기관이다. 반면 학원은 목표가 입시나 교과목 성적 향상 등 특정 대상으로 정해져 있다. 고로. 그곳에 존재하는 선생님의 의미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이 학교에 있느냐 학원에 있느냐에 따라 선생님에게 학생이 요구하는 역할 기대가 다르다.

#좋은선생님 에 대한 고찰


내가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모 대학입시 기숙학원의 분위기는 이러했다: 담임 선생님이 24시간 동안 학생들과 함께 하는 ‘스파르타 시스템’이었다. 밀착 관리를 강조하기 위해 ‘24시간’이라는 표어를 강조한다. 잠을 자는 시간과 오전 자습시간, 수업시간을 제외하면 100%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 담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고등학생들이 잠시 거쳐 가는 윈터스쿨(겨울방학 때 잠시 기숙학원을 체험하며 방학 특강 시간표에 맞춰 밀도 있게 공부하는 시스템)에 비해 재수정규반 학생들에게는 그 선생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장기적으로 가치관도 바꿀 수 있을 만큼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스무 살의 나이는 여전히 외적 환경에 의해 사회화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때다. 같은 구성원들과 1년 내내 함께하다 보면 그 영향은 곧바로 학생의 진학 성적에도 반영될 정도다.

선생님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잊지 말아야 할 덕목은 바로 ‘들어주기’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잘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당장 상대에게 무슨 말을 해줄지, 어떤 것을 먼저 말하고 어떤 것은 나중에 말할지 구분할 수 있는 지혜와 여유가 생긴다. 게다가, 말하는 내용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메시지를 전달하느냐다. 『자유론』에서 저자 존 스튜어트 밀이 강조했듯이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세심한 어휘 선택과 세련된 어조다. 내가 인간관계를 확장하면서 최초로 진지하게 처세와 대화의 방법에 대해 성찰하게 된 시기가 바로 이때부터다.

​2009년 말부터 총 윈터스쿨 3회, 재수정규반 1회를 수학 및 영어 질의응답 문제풀이 조교로, 멘토로 일을 하며 뜻하지 않게 정말 다양한 성격적 특성을 지닌 수천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다 보니 다양한 인간의 속성을 경험할 수 있었고 더불어 일하던 또래의 모습도 관찰했다. 그러자 문득 그 사람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비교되며 인간의 공통점과 다른 점을 인지하게 됐다.

​일을 막 시작했을 때 문득 질문이 생겼다. 정작 누가 나와 대화를 해줄 것인가? 왜 나를 찾아와 대화를 하려 할까? 결과적으로 어떻게 나는 나를 찾아오는 아이들의 마음을 열었고, 그들이 스스로 나를 찾아 자신의 속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꺼낼 수 있었는가? 부스를 차려놓고 오라고 한들 동기 없이 누가 나에게 오겠느냐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좋은 선생님의 철학을 사유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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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생님은 실력과 전문성을 갖춘다


​첫째 요건은 바로 ‘실력과 전문성’이다. 전문성은 학생들이 받을 선생님에 대한 첫인상을 결정한다. 학생과 선생의 관계에서 무지한 상대에게 호감과 신뢰를 가지려면 먼저 실력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내가 수학조교로 있을 때에는 수학 실력이 바로 그 전문성을 대표했다. “저 수능시험 만점 받은 조교입니다”라고 한다면 필요한 학생들은 “일단 한 번 가봐?”라고 호기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즉, 당신이 나를 모르는 상황에서 나를 어필할 최초의 방법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것이다.​

학생들이 가져오는 문제를 초장부터 화려한 언변으로만 치장해 구슬려 돌려보내 봐야 궁극적으로 문제를 풀어내지 못한 조교에게는 다시 질문하러 오지 않는 것이 학생들의 심리다. 오히려, 명쾌하면서도 날카롭게 문제를 해결하는 시원스러움이 학생들의 지적인 갈증을 빠르게 해소시키고, 그것은 쾌감으로 돌아와 그 멘토를 계속 찾게 하는 시발점이 된다. 이때의 만남은 니즈를 충족시키는 지극히 단순한 비즈니스 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장기적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좋은’ 선생님으로 이어지기에는 역부족이다. 함께 일한 조교들은 나름(?) 엄선된 사람들이었다. 당시엔 대부분이 수능 시험 직후 대학조차 붙지 못한 반 백수 상태의 신분에 불과했지만, 다들 좋은 대학을 목표로 공부를 치열하게 한 사람들이었고 좋은 대학에 지원을 마쳤다. 수학조교에게 필수인 수학 실력도 출중했는데 그 이유는 다수가 수능시험에서 100점을 받았거나 1등급 상위에 백분위를 받았기 때문이다.

#좋은선생님은 들어주는 자세를 갖춘다


첫인상을 대변하는 실력이, 전부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것이 더 필요한가? 바로 ‘들어주는’ 자세이다. 사실 이것은 좋은 선생님뿐만 아니라, 좋은 인간관계를 위해서 필요한 아주 기본 소양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기본적인 것을 자주 잊을 때가 많다.

나는 수학 조교로 일하면서 난생 처음 진지하게 그 가치를 체험했다. 난 단지 내가 겪었던 경험을 통해, 내 주위에서 나보다 성실하고 열심히 임했던 훌륭한 친구 조교들을 보면서 조금씩 배워갔다. 바로 들어주기의 힘을!

​조교는 수학에 대한 질문뿐만 아니라 다양한 역할들을 부수적으로 수행했다. 학생들과 비슷한 또래였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차단된 환경에서 삭막하게 공부만 하던 아이들에게는 나이 많고 어렵게 느껴지는 직원이었던 선생님들보다 훨씬 다가가기 쉬운 존재가 아르바이트 조교들이었다. 어른들에게 못다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존재, 혹시 우리 이야기를 제대로 안 들어줄까 하는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비슷한 또래의 조교 형님, 누나, 오빠, 언니였다. 더불어 현재 자신들이 걷고 있는 깜깜한 입시의 길을 묵묵히 걸어보았던, 그것도 최근에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존재이기에 더욱 질문을 하고 싶은 존재, 그것이 조교였다. 때로는 답답함을 털어놓고 싶은 학원 내 유일하게 허락된 대화 친구이기도 했다.

​십 수 명의 조교들 중 여섯 명의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했던 내 친구들은 공히 들어주기의 달인들이었다. 학생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단순히 자신이 알고 있는 수험 생활의 노하우를 전수하지 않고 진심으로 깊이 공감하는 귀가 필요하다. 불과 1~2년 전에 그 입시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그 심정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또 특정 시점에 가지게 되는 수험생의 고충과 답답함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

​모든 교육의 장에서 학생들에게는 선생님의 작은 관심이 큰 자극과 동기부여가 된다. 자기 주변에서 자신을 응원해주고 믿어주는 사람이 많더라도, 심리적으로 아무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 바로 수험생활이다. 그것을 쉽게 ‘고독감’이라고 부른다. 부모와 떨어져 삭막하게 공부만 해야 하는 기숙학원이라면 두 말하면 잔소리다. 그런 곳에서 자신의 말에 경청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설령 해결책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그 말 한마디 내뱉고 듣는 순간 본인은 카타르시스를 느껴 고독감을 이겨내고 마주한 힘겨운 현실을 버텨낼 힘을 얻는다. 그래서 학생들은 자신이 들어졌다는 카타르시스를 느낀 이후 상담을 애용한다.




당신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뜨거운 눈물을 함께 흘려본 적 있는가? 십 분이든 한 시간이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어깨에 손이 올라가 토닥토닥 해주고, 학생들이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감정에 복받쳐 당신 앞에서 눈물을 흘려주던가? 나는 그렇다면 감히 당신이 들어주기를 잘해주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선생님이란 들어주기를 통해 서로 마음의 문을 여는 것, 내가 너를 알고 네가 나를 알고 있다는 작은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루소는 『에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표현보다도 간결하고 와 닿는다:

청년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애정이라는 고삐이다. 당신은 이 고삐를 통해 그의 마음을 움직인다…(중략)…사랑이 없을 때는 오로지 그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그러나 사랑을 갖게 되면 그 인연의 끈에 속박된다. 청년의 감수성이 사랑 쪽으로 이끌리는 것이다.

-돋을새김 2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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