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할미, ‘신’일까 ‘미신’일까

누군가 ‘신화’에 대해 잘 아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자연스레 서양의 신화를 떠올린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나 켈트 신화의 주인공의 이름들을 척척 읊어대며, 그들의 이야기를 막힘없이 풀어내는 사람은 학식 높고 교양 있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저승할망, 조왕신, 측신과 같은 이름은 어떨까? 아이를 점지하고 출산을 도와준다는 삼신할미나 부엌의 일을 살펴준다는 조왕신을 ‘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건 다 옛날이야기일 뿐이라며, 혹은 ‘미신’이라며 무시하고 등한시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서양의 신비로운 이야기는 ‘신화’로 추앙하기 바쁘면서, 우리네의 이야기는 ‘미신’으로 치부하고 마는 것이다.

웹툰 <신과 함께>가 큰 인기를 얻고, 이를 원작으로 제작된 동명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며 우리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하는 한국 전통 이야기의 저력을 실감하였다. 한국계 미국인 이윤하 작가가 집필한 소설 <나인폭스 갬빗(Ninefox Gambit)>은 구미호 설화를 차용한 SF 소설로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휴고상’에 3년 연속 노미네이트 되었다. 우주선에서 김치를 먹는 우주인이 구미호 장군을 만나는 이야기가 세계 시장에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던 셈이다. 북유럽 신화 속 토르의 이야기가 여전히 세계 영화 시장을 제패하고 있지만, 우리의 전통 이야기에도 충분한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세계는 우리의 이야기와 가까워지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우리의 신화와 멀찍이 떨어져 있다. 아직도 우리에게 ‘신화’는 서양의 신화에 가깝고, ‘영웅’은 헐리우드 영화 속에 존재한다. 신탁을 받는 대사제의 모습은 신비로운 존재이나, 신과 소통하는 무당은 어딘지 무섭고 꺼림칙하게 여긴다. 바리데기의 이름은 아직도 낯설고 삼신할미의 이름은 너무도 익숙하여 하찮게만 느껴진다. 우리의 무관심이 한국의 전통 신을 ‘미신’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 신화의 특징

한국의 신은 지배하는 대신 화합을 추구하는 신이다. 서양의 신은 ‘지배자’이며, 필연적으로 다른 신의 존재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배자로서 각자의 지배 영역을 두고 다투기 때문이다. ‘트로이 전쟁’이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인정받기 위한 신들 사이의 경쟁에서 발발했다는 점은 서양 신들의 이러한 특징을 내포하는 대표적인 대목이다. 반면, 한국의 신은 자연을 구성하는 일원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자연의 상호 작용과 흐름을 인정하고 다른 신들의 행위와 영역을 존중한다. 다른 신적 존재의 행위에는 반드시 마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으며, 그로 인한 갈등을 조화롭게 해결하고자 한다.

둘째, 한국 신화의 주인공은 지극히 인간적인 특성을 보인다. 한국의 신들은 대부분 원래는 인간이었던 존재이다. 태어나길 인간으로 태어나고, 인간으로서 느끼는 한계와 고난을 온몸으로 겪어낸 끝에 마침내 신으로서 자리매김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일상사, 인간으로서 느끼는 삶의 고단함과 어려움과 보다 밀접하게 맞닿아있다. 흔히 인간과 같이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그리스 신화의 신들을 ‘인간적’이라고 표현하지만, 한국의 신의 인간성은 이와는 다른 방향으로 드러난다. 인간을 신의 피조물로 여기는 서양의 신과 달리, 인간이 신으로 좌정하여 탄생한 한국의 신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의 삶과 사회를 마음으로 굽어살피는 존재이다.

셋째, 한국의 신은 인간을 지배하는 대신 인간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존재이다. 앞서 언급하였듯, 서양의 신은 인간의 창조주 자리에 위치한다. 그렇기에 신을 향한 인간의 배타적인 믿음과 숭배를 요구한다. 신의 뜻에 반할 경우, 적극적으로 권능을 발휘하여 인간을 벌하고 저주를 내린다. 그러나 한국의 신은 다르다. 그들은 인간을 지배하기보다는 인간의 아픔을 돌보는 데 주력한다. 인간이 삶 속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아픔을 헤아리고, 그 아픔의 근원과 화해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의 위치가 한국의 전통 신이 자리한 곳이다.

우리가 잊은 우리의 신화

「살아있는 한국신화」의 초판은 「살아있는 우리신화」로 2004년에 출간되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책이라 여전히 초판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게 벌써 17년이나 된 셈이다. 이 책이 ‘신간’이라 불리었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늘 말했다. 우리의 것을 찾자고. 우리만의 독특한 이야기로 승부를 해야 한다고. 그로부터 17년이 흘렀고 우리의 것을 발굴하자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우리의 신화와 크게 가까워지지 못했다.

물론 의미 있는 시도도 이어졌다. 전술한 <신과 함께> 시리즈와 더불어 <묘진전>, <바리공주>, <극락왕생> 등 한국 신화와 민담을 재해석한 양질의 작품들이 사람들과 만났고, 「살아있는 한국신화」의 저자를 비롯한 많은 연구자가 한국 신화와 민담에 대한 저서를 출간하였다. 한국 신화를 모티프로 한 소재를 발굴하는 창작계의 노력 또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우리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와 관심도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신화와 설화가 무수한 세월을 거쳐서도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인간에 대한 고찰이 충분히 의미 있고 깊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그 안에 담긴 생각과 의미를 되돌아보지 않는다면 신화와 설화는 그저 잊혀진 이야기가 될 뿐이라는 점을 역설한다. 진부하다고만 여긴 구미호의 이야기가 SF를 만나 재탄생했듯, 흔하고 오래된 이야기라고 해서 그 이상 특별한 것이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삼신할미를 미신으로 남길지, 생동감 있게 살아 숨 쉬는 신으로 기억할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책 소개

제목: 「살아있는 한국신화」

저자: 신동흔

출판사: 한겨례출판

출간일: 2014.03.20

정선희 작가
서강대학교 사학•신문방송학 학사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연극영화전공 석사
교보문고 스토리 에이전시 소속 작가
소설 <연인 광복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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