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항거>는 1919년 만세운동 이후 투옥된 유관순 열사, 그리고 그녀와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모습을 담았다. 유관순 열사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만큼 많은 관객의 호응을 얻었지만, 일각에서는 영화의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영웅’ 유관순 열사의 모습을 피상적으로 그려내었다는 아쉬움이 대표적이었다. 유관순 열사가 어떻게 성장하였는지, 어떻게 만세운동을 부르기를 결심하였는지, 그 결연한 의지를 실천하기까지 어떤 고초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다루지 않은 채, 열사가 투옥된 이후 고문으로 고통받는 자극적인 장면을 그려내는 데만 집중하였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고초를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연출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항거>가 유관순 열사의 영웅적 면모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온전히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는 모두 영웅의 탄생을 원한다. 성스럽고 고결하여 시련에 쉬이 흔들리지 않는 위대한 영웅의 탄생. 하지만 영웅은 그 자체로 완성된 신이 아니다. 강인한 의지로 영웅이 되었다고 한들, 여전히 사람이다. 자유를 갈망하고 자신의 신념에 회의를 느끼면서도 연대하며 나아가는 사람. <항거>는 정형화된 영웅담 속 주인공이 아닌 생생한 고통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이겨냈던 사람 유관순 열사의 모습과 함께 그녀와 함께 수감되었던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영웅적이고도 인간적인 모습을 담아내었다.

신념, “정당한 일을 하니까, 하느님이 도와주실 줄 알았어요.”

사람은 신념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는 후회한다. 가지 않은 길을 후회하기도 하고 예상치 못했던 결과 앞에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기도 한다. 설령 그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예상치 못한 처참한 결과가 눈앞에 펼쳐졌을 때, 영웅이라고 해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가슴 아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관순 만약에 만세를 부르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당하지 않았을 텐데 그런 후 회 한 적 없어요? (중략)

향화 관순 씨는 후회해요? 우리 이렇게 될 줄 알고도 만세 부르지 않았나요?

관순 저는 의무라고만 여겼어요. 나라를 되찾으려는 당연한 의무. (중략) 어떻게 보면 나란 년은 정말 이상 속에서 잘난 체만 하면서 산 것 같아요. (중략) 내가 경성에서 만세 소식을 전하러 내려오지 않았다면 우리 부모님, 그리 고 열다섯이나 되는 내 고향 사람들까지 돌아가시지 않았을지도 모르잖아 요. 아무래도 정당한 일을 하니까 하느님이 도와주실 줄 알았어요.


만세운동에 임할 때, 관순은 의무를 생각했다. 나라를 되찾으려는 지식인이자 자주인으로서 짊어져야 할 당연한 의무. 그런 신념이 있었기에, 올바른 길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이후의 일은 신이 도와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현실은 참혹했다. 관순은 그 결과 또한 감내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나만 아니면 부모님도 마을 사람들도 죽지 않았을 거라고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이상 속에 살아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후회하고 흔들리는 관순의 묘사가 아쉽지 않다. 회의를 느끼면서도 이내 울음을 그치고 다음 만세 운동을 기획하는 관순과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은 도리어 엄중함을 자아낸다.

연대, “우리는 개구리가 아니다.”

옥이는 만세를 부른 것을 후회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만세를 부를 것이라 했다. 왜놈의 칼에 팔이 숙 잘린 친한 언니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향화는 나라나 의무 같은 건 모르지만, 천해도 인간 대접은 받고 싶었다고 했다. 죽일 테면 죽이라는 각오로 만세를 불렀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관순은 울음을 터트린다. 나 같은 건 사실 만세를 부를 자격이 없었던 것 같다며.

향화 이 안에 있는 사람들 다 처지가 다르듯이, 만세를 부른 연유도 다 다른 거예요. 관순 씨 부모님도 마찬가지고. 스스로 결정하신 거예요.

향화의 말처럼, 만세를 부른 이유는 사람마다 달랐다. 그러나 한 명 한 명 모두 스스로 결정해서 만세를 불렀다. 간신히 서 있기도 힘든 옥에 갇혀서도 아리랑을 부르고 애국가를 부르고 만세를 불렀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음식을 나누고 고통을 함께했다. 과거를 후회하고 신념에 회의를 느끼면서도 함께 연대하여 서로를 지지했다. 이들은 개구리가 아니었기에. 간수가 나타났다고 해서 겁먹어 울음을 뚝 그치고야 마는 개구리가 아니었기에.

자유, “자유란, 하나뿐인 목숨을 내가 바라는 것에 마음껏 쓰는 거.”

만세를 부른 이유의 외양은 다를지라도, 그 이유는 본질적으로 닮아있다. 바로 ‘자유’를 갈망했다는 점이다.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할 자유, 사람답게 살 자유, 신념을 표했다고 해서 죽임을 당하지 않을 자유. 극 중 관순은 자유롭게 살지 못할 바에야 산다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남들이 시키는 대로 살지 않고 하라는 대로 굴복하지 않는 삶. 하나뿐인 목숨을 자신이 바라는 대로 마음껏 쓰는 삶이 자유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온 마음과 몸을 던졌다. 그리고 이 땅에, 오늘날의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다.

영웅은 그 자체로 완성형이 아니다. 신념을 따르고 주변과 연대하며 끝까지 나아가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는 진행형과 같다. 몇 번이고 흔들리면서도 뜻을 따라 살았던 역사 속의 영웅들. 그들을 기억하는 일 또한 끊임없이 반복하고 지속해야 할 것이다.

작품소개

제목 항거(2019)

감독 조민호

내용 1919년 3월 1일 만세 운동 후, 체포된 유관순과 서대문 감옥 8호실에 수감된 여성들 이 겪어낸 이야기

정선희 작가
서강대학교 사학•신문방송학 학사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연극영화전공 석사
교보문고 스토리 에이전시 소속 작가
소설 <연인 광복군> 저자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