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보리의 소원

예쁜 바닷가 마을에 사는 열한 살 소녀 보리는 다정한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남동생 정우와 함께 살고 있다. 보리네 가족은 서로를 바라볼 땐 늘 맑게 웃는다. 햇살이 드리우는 마루에서 함께 늘어지게 잠을 자고, 한 상에 둘러앉아 짜장면을 시켜 먹는다. 보리네 가족을 감싸는 공기는 내리쬐는 봄볕처럼 따뜻하고 고요하다. 항상 함께하며 대화를 나누지만, 항상 고요한 적막이 맴돈다. 보리의 엄마와 아빠, 그리고 정우는 청각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보리는 코다(CODA, Child of deaf adult: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청인) 이다.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보리는 배달 음식 주문을 도맡아 하고 엄마의 은행 업무 처리를 돕는 등 가족과 다른 청인들 사이의 소통을 돕는다. 때로는 수화로, 때로는 글씨를 써서 가족들과 소통한다. 그래서 보리는 외롭다. 늘 가족이 함께이지만, 보리는 어쩐지 자신만 동떨어진 기분이다. 보리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은 보리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말’을 하지 않고도 너무나 자유롭게 소통하지만, 보리는 그런 가족에게 조잘조잘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래서 보리는 한 가지 소원을 품게 된다. ‘나도 소리를 잃어버렸으면 좋겠다’라고.

소리를 잃기 위해 애를 쓰던 보리는 해녀 일을 오래 해서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던 할머니의 인터뷰를 보고 스스로 바닷물에 뛰어들기에 이른다. 그런데도 야속하게 소리는 잘만 들린다. 결국, 보리는 연극을 벌이기로 한다. 보리는 그렇게 사고 이후로 더 이상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척한다.

소리 듣고 싶어?

특별한 이상은 없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보리. 이를 계기로, 보리와 정우는 정밀 검사를 받게 된다. 끝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은 척했던 보리와 달리, 정우는 인공 와우 수술을 통해 약간의 소리를 듣는 것이 가능해지리라는 진단을 받는다.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간 고모는 이 기쁜 소식을 엄마와 아빠에게 알리고 적극적으로 수술 일정을 잡아준다. 수술을 받으면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은 채.

정우는 학교에서 제일 축구를 잘하는 아이로 꼽힌다. 최고의 공격수이며, 정우 역시 축구를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그런 사실들은 ‘장애’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는데, 평생 들을 수 없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데, 그까짓 공놀이나 운동을 못 한다는 것이 무슨 대수이겠는가. 그러니 고모 역시 ‘수술 이후에는 축구를 할 수 없다’라는 사실을 굳이 알리지 않는다. 장애를 이겨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리는 알고 있다. 정우에게 축구가 얼마나 소중한 일이며, 정우가 축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이다. 그래서 전전긍긍한다. 여태 듣지 못하는 척 해왔는데, 자신이 들은 것을 말해 줘야 하는지, 정우가 ‘소리를 듣는 일’이 더 중요하니 그냥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는지. 그래서 자꾸만 정우에게 정말 소리를 듣고 싶은지 묻고 또 묻는다. 정우는 보리가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끝내 이렇게 답한다.

보리 (수화) 소리 듣고 싶어?

정우 (수화) 소리 듣고 싶기보다는

친구, 대화, 친구, 모두 다, 수화, 할 수 있으면 좋겠어.

귀가 들리지 않는 정우에게 축구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해주는 유일한 창구였다. 축구를 하는 순간만큼은 친구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되묻지 않아도 되고 ‘혹시나 내 욕을 하는 것 아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정우가 바란 건 장애의 극복이 아니다. 장애가 있어도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장애가 있어도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 진정으로 정우가 소망하는 것이었다.

장애는 극복해야 하는 문제일까

장애를 소원으로 비는 보리의 심상을 선뜻 이해하기는 어렵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소외감이야 충분히 상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후천적 장애를 자발적으로 바라는 심정이라니. 정우의 선택도 그렇다. 정우는 수술을 받으면 운동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뒤, 수술 대신 축구 시합에 나선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장애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보리, 그리고 장애를 가진 당사자인 정우의 소망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감히 짐작해보면, 보리와 가족에게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보리의 아빠는 보리가 소리를 들을 수 있든 없든 똑같이 보리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보리가 사고로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이후에도 – 비록 보리의 연극이었지만-, 보리의 가족은 절망에 빠지거나 비통해하지 않는다. 다만, 보리가 들을 수 없게 됨으로써 일어난 불편함을 감수하며 따뜻하고 화목한 모습 그대로 일상을 살아간다. 서로 사랑하고 소통하며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장애는 그들에게 힘들기만 한 문제가 아니었다.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 또한 일종의 편견과 차별이 될 수 있다. 장애를 극복하라는 응원도 좋지만, 장애가 있음에도 자유롭게 소통하고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일구어갈 수 있다면 더욱더 좋지 않을까. 따뜻한 보리네 가족의 이야기가 마냥 영화 속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 세상이 올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길 소망한다.

작품소개

제목 나는보리(2018, 개봉:2020.05.21)

감독 김진유

내용 가족 중에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열한 살 소녀 보리, 수어로 대화하는 가족들 사이 에서 외로움을 느끼며 소리를 잃고 싫다는 소원을 품게 된다. 제20회 가치봄영화제 대상 수상작.

정선희 작가
서강대학교 사학•신문방송학 학사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연극영화전공 석사
교보문고 스토리 에이전시 소속 작가
소설 <연인 광복군> 저자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