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국어의 주인인가

가끔 그런 상상을 해본다. 한국어 사용 능력을 시험 형태로 측정한다면, 생각보다 낮은 성적을 받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만큼 한국어와 한글은 어렵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교육해왔고 글쓰기를 직업으로 택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맞춤법을 완벽하게 지키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여기서는 띄어 쓰는 건지 붙여 쓰는 건지 헷갈리기 일쑤이고 발음과 다른 단어는 왜 이리도 많은지 난감하며, 외래어 표기법은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지 늘 고민이다. 글을 쓰고 말을 하는 내내 머릿속에는 ‘이 단어는 외래어인가? 혹시 일제 강점기에 유입된 옳지 못한 단어인가? 이왕이면 한자어 대신에 순 한글을 써야 하나, 지금 번역투를 쓰고 있지 않은가?’ 하는 질문들이 꼬리를 문다. 한국어에 대한 자부심은 견고한데 정작 한국어를 완벽하게 쓰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물론, 올바르게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일은 중요하다. 틀린 부분이 있다면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것이 ‘압박’으로 다가올 때 벌어지는 일이다. 짐작건대, 상당수의 학생이 말하기나 글쓰기를 기피하는 현상 역시 여기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말했을 뿐인데, ‘요즘 애들이 한글을 다 파괴하고 있다’고 비난받고 공들여 적은 답안지는 첨삭을 거쳐 빨간색 코멘트로 뒤덮여 돌아오니 말이다. 그러다 보면 무엇을 어떻게 전달할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혹시나 무언가 ‘틀리지 않았는가’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말을 해야 하는 자리에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글로 나를 표현해야 하는 순간에 제대로 글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난다.

오랜 시간 음운론과 방언학을 공부하며 한국어와 한글을 연구한 국어학자 한성우는 그런 우리에게 ‘말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말의 주인이란 무엇일까? 완벽하게 언어를 구사하는 것? 모든 문법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 저자는 그의 저서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의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 땅의 모든 이들이 곧 말의 주인입니다. 이들이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쓰는 말들이 모여 우리말을 이루니 이것이 곧 한국어입니다. 자신들이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늘 주눅이 들어 있지만 이들이 이 땅 모든 말의 주인입니다.” -한성우(2020),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 p.6-7-

한국어를 둘러싼 환상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 은 방언, 외래어 표기, 띄어쓰기, 정확한 발음, 사이시옷 문제 등 한국어를 둘러싼 20가지의 생각거리를 제시한다. 다양한 주제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한국어에 대해 어떠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바로 한국어의 ‘순수성’과 ‘절대성’에 대한 환상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은 그 독창성과 과학성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문자가 없는 먼 타국에서 한글을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소식은 우리의 자긍심을 한껏 고취한다. 한글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 한글은 한국인에게 순수하고 절대적인 무언가로 여겨진다. 한글은 한국 고유의 것으로 순수한 언어이며, 한국어 규범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대상인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자부심은 넓은 시야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애초에 ‘순수한 말’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한국어는 방언의 집합체이지 규범집에 있는 표준어가 아닙니다. 각 지역, 온 세대의 말들이 뒤섞여 우리말을 이루는 것이지 백옥같이 흰 우리말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나라 말에서 흘러 들어온 말도, 특정한 사람들 사이에서 쓰이는 말들도 우리말의 일부를 이룹니다. 이 말들이 그들 사이에서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다면, 그리고 그 밖으로 흘러 나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우리말의 일부가 될 자격은 충분합니다.” -한성우(2020),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 p.139-

저자의 말대로, ‘순수한 한국어’의 기준을 찾기란 쉽지 않다. 외래어와 외국어를 제외한다면 일본어에서 유래된 ‘냄비’와 ‘구두’도 사용할 수 없고 ‘후드 티’는 ‘모자 달린 상의’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외국어에서 유래된 말을 제외한다면, 한자를 기원에 둔 한국어는 어떻게 볼 것인지 의문이 든다. 순우리말만 활용한 대화가 가능한 일일까? ‘표준어’를 기준으로 둔다면, ‘방언’은 순수한 한국어라고 할 수 없을까? 방언이 순수한 한국말이라면, 특정 집단에서만 사용하는 ‘은어’를 무작정 올바르지 못하다고 비난하기도 어렵다.

한국어 규범이 ‘절대적’이라는 환상 역시 마찬가지이다. 규범은 변화한다. 한글이 창제되었을 무렵, 우리 조상은 ‘꽃’과 뿌리’를 ‘곶과 ‘불휘’라고 적었다. ‘곶’에 대한 사람들의 쓰임이 점차 변화하며 ‘꽃’이 된 것이다. 절대적으로 규범을 시켜야 한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꽃’ 또한 올바르지 못한 말이 된다. 언어는 쓰임에 따라 사라지기도, 변화하기도, 새로이 규범 안에 편입되기도 한다. 일례로, 우리는 이제 누군가에게 마음이 상하면 ‘삐칠 ’수도 ‘삐질’ 수도 있다. 글씨를 ‘괴발개발’ 쓰거나 ‘개발새발’ 쓸 수 있으며, 다시 ‘예쁘게’ 고치거나 ‘이쁘게’ 고칠 수도 있다. 전자는 기존에 인정되던 표준어이고 후자는 새로이 인정되기 전까지는 ‘잘못된 말’로 취급받던 말들이다. 이처럼 언어는 변화하며, 규범도 이에 맞추어 서서히 변화한다.

언어를 대하는 태도

언어의 순수성과 절대성이 환상이라고 해서, 맞춤법 따위야 상관없이 뜻한 통하면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저자가 말하듯, 주인은 “자신의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결코 함부로 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말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태도를 지녀야 한다. 그야말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한국어를 사용하되, 자유에 따르는 책임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빡빡한 맞춤법 규정에 답답함을 느낀다면, 어떤 점이 불합리한지를 따져보자. 특정 표현이 잘못된 것 같다면, 더 좋은 표현은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 보자. ‘이상한 높임말’을 사용하는 종업원의 응대가 거슬린다면, 그게 화자만의 문제인지, 높임말을 듣고 싶어 하는 청자의 문제는 아닐지 되짚어보자. 나의 ‘말’에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충분히 담겨 있는지 고민해보자. 내 손끝에서 쓰이는 글이 부적절한 내용과 표현을 담고 있지는 않은지, 그렇다면 어떻게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 갈 수 있을지 스스로 돌아보자. 한국어의 주인으로서, 우리는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과 역량이 있다. 그것은 주인으로서 마땅히 책임져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

책 소개

제목: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

저자: 한성우

출판사: 창비교육

출간일: 2020.11.30

정선희 작가
서강대학교 사학•신문방송학 학사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연극영화전공 석사
교보문고 스토리 에이전시 소속 작가
소설 <연인 광복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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