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만 반복하던 제임스

제임스는 거리를 떠돌았다. 길거리 뮤지션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노래를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역무원에게는 부랑자 취급받기 일쑤였다. 이렇다 할 수입도 없는 데다 돈이 생기면 식사 대신 약물에 손을 대곤 했다. 길에서 마주친 아버지는 그를 모른 체하며 도망가기 바빴다. 기어이 아버지를 쫓아가서 안부를 건넨 제임스가 약을 끊었고 중독 치료 중이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또?”라고 되물을 뿐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의 주인공 제임스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버려진 뒤 방황을 거듭하다 약물 중독에 빠져버렸다. 이따금 정신을 차리고, 약을 끊고 성실히 돈을 벌어보려는 시도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의 시작은 오래가지 못했고 다시 제자리를 맴돌 뿐이었다. 시작만 반복하던 제임스에게 믿음과 지지를 표하는 사람 역시 많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자 제임스의 역시 누군가가 자신을 진심으로 응원하리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그 시작을 이어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끝을 맺지 못하고 시작만 반복하는 사람을 신뢰하기도 힘들다. 시작과 실망이 반복되며 제임스의 삶은 더욱 수렁에 빠져갔다. 그럼에도 제임스는 시작을 반복했다. 실패를 이어지더라도 또다시 발을 내디뎠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약물 중독 치료센터 담당자의 경고와 함께 마지막 치료 프로그램을 다시 시작했을 때, 제임스에게는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귀여운 손님은 제임스의 인생을 기적처럼 바꾸어놓았다.

“제 고양이가 아니에요.”

제임스를 찾아온 손님은 연갈색 길고양이 ‘밥’이었다. 천연덕스럽게 제임스의 집으로 들어온 밥은 몰래 시리얼을 훔쳐 먹었다. 끼니를 때우기도 어려운 제임스였기에, 얼마든지 화를 내며 고양이를 쫓아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제임스는 ‘그건 우유랑 같이 먹어야 제맛’이라며 밥에게 우유까지 꺼내주며 밥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길거리로 돌아간 밥이 상처를 입고 왔을 때는 일주일 치 식비를 탈탈 털어 약값을 지불했다. ‘제 고양이가 아니에요’라는 말을 반복하면서도 밥을 외면하지 못하고 계속 돌보았다. 밥 역시 그런 제임스의 곁은 떠나지 않고 졸졸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밥은 기어이 제임스의 버스킹 장소까지 따라갔고, 제임스는 하는 수 없이 밥을 자신의 어깨 위에 올리고 공연을 시작했다.

그 뒤로 이어진 일들은 예상 밖이었다. 제임스의 어깨 위에 얌전히 올라타 있는 밥은 사람들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모두가 제임스를 바라보고, 그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제임스와 밥의 이야기를 취재하고 싶다는 기자까지 나타났고, 늘 부랑자 취급을 받던 제임스를 ‘선생님(sir)’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따뜻한 응원에 제임스는 처음으로 행복을 느꼈다.

운 좋게 고양이 한 마리를 덕에 호사를 누린다며 제임스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봤자 가난한 부랑자일 뿐이니, 그 고양이를 자신이 사서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며 돈을 내미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제임스는 단순히 운이 좋아서 밥과 함께하게 된 것이 아니다. 유약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과 달리, 제임스의 내면이 충분히 따뜻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제임스는 얼마든지 밥을 외면할 수 있었다. 당장 자신이 굶게 생겼는데, 갑자기 숨어들어와 음식을 훔쳐 먹는 길고양이 따위 알 바 없다며 내쫓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제임스는 ‘밥이 자신의 고양이가 아님에도’ 한 생명을 외면하지 않았다. 제임스는 약한 인간이었지만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를 보듬을 줄 아는 사람이었고, 결코 여유롭다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것을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제임스였기에 밥을 만났고, 밥은 그를 떠나지 않은 것이다.

시작을 마침표로 이어가는 따뜻한 힘

길거리의 뮤지션과 길고양이는 모두 도시에서 소외된 존재이다. 그런 두 존재가 만나 서로를 지켜보고 보듬으며 공존하는 사이로 거듭날 수 있었다. 제임스가 밥을 보살피는 만큼, 밥은 제임스에게 살아갈 의지가 되어주었다. 가난에 휘둘리고 괴로움이 찾아와도, 제임스는 밥은 굶기지 않으려 애썼다. 약물 금단 현상에 몸을 가누지도 못할 고통이 찾아와도, 제임스는 자신의 곁을 묵묵히 지키는 밥을 보며 견뎌내었다. 누군가와 따스한 온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제임스를 달라지게 만들었다. 결국 제임스는 약물 중독을 완전히 이겨냈고, 그의 ‘마지막 시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그 이후, 제임스는 밥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하여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하고 소외당한 사람과 동물들을 위한 사회운동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시작을 마침표로 이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과정에 서로의 마음을 기대고 함께 힘을 보탤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마침표까지 나아가기 위한 힘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따뜻한 힘을 보여준 이 영화를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 2021년의 우리에게 추천하고 싶다. 새해에는 우리에게도 밥과 제임스처럼 위로와 힘이 되어줄 존재가 찾아오기를. 새해에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온기를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그렇게 우리 모두 서로의 힘을 합쳐, 지금의 시작을 아름다운 마침표로 이어갈 수 있게 되기를.

작품소개

제목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A Street Cat Named Bob, 2016, 국내개봉: 2017.01.04.)

감독 로저 스포티스우드

내용 꿈도 희망도 잃어가던 길거리 뮤지션 ‘제임스’, 상처 입은 길고양이 ‘밥’과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인생의 두 번째 기회를 얻게 된다. 실화를 소재로 쓴 동명의 에세이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정선희 작가
서강대학교 사학•신문방송학 학사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연극영화전공 석사
교보문고 스토리 에이전시 소속 작가
소설 <연인 광복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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