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와로 가는 배

역사 속 모든 사건은 ‘그리고 사람들의 삶은 어려워졌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는 이야기가 있다. 동서를 막론하고 평화로운 시기는 손에 꼽을 만큼 드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들고 고된 날들을 보냈다는 기록만 잔뜩 담아있으니, 영 틀린 말은 아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일제강점기는 대한민국 역사에 큰 상흔을 남겼다. 격동의 시대 한복판에 내던져진 사람들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담대하게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일제의 탄압에도 마냥 주저앉아서 울고 있지 않았다. 대신 변화를 온몸으로 마주했다. 미래를 꾸려나가기 위해, 30여 일 동안 꼬박 배를 타야 도착할 수 있는 포와(하와이)행 선박에 몸을 실었다. 몸이 부서질 듯 일해서 번 돈으로는 가족을 부양하고 독립운동을 위한 성금을 보냈다. 절망을 터닝 포인트로 삼은 사람들은 최초의 하와이 이주 한인 노동자들과 그 가족이었다.

이민의 역사

1903년 1월, 대한제국 정부가 최초로 공식 인정한 한인 이민자들이 호놀룰루 항에 내렸다. 지금과는 달리 옆 마을조차 쉬이 넘나들 수 없던 시기였지만, 이들은 뱃길로 30여 일이 걸리는 멀고 먼 나라에서 운명을 개척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노예처럼 채찍질을 맞으면서도 견뎌내었다. 1905년 일본 정부에서 이민 금지령을 내리기 전까지, 약 7,200명의 한인은 하와이 이주를 택하였고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한인 노동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독신 남성들은 조선 여성을 배필로 삼고 싶어 했고 중매쟁이를 통해 조선으로 자신들의 사진을 보냈다. 사진을 받아 든 여성들이 고민에 빠지면, 중매쟁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포와에 가면 나무에 옷과 신발이 주렁주렁 열려있고, 마음껏 공부도 할 수 있다고. 그 말이 조선의 여인들에게는 이렇게 들렸으리라. 포와에 가면 남은 조선에서와는 달리 넉넉히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을 거라고. 일제의 서슬 퍼런 칼날에서 벗어나 공부도 하고 미래를 개척할 수 있을 거라고.

암울한 시기, 가정과 일상을 유지하는 것은 여성의 몫이었다. 남성들은 ‘큰일’을 하기 위해 가정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고, 돈을 벌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은 여성의 역할이었다. 게다가 남성들이 변고라도 당하면, 여성은 남겨진 가족들을 부양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했다. 그렇게 여인들은 사진 한 장만 들고 머나먼 이국으로 떠났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

신파를 역사로 만든 버들의 여정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조선 땅을 처음으로 벗어나 남편 될 사람의 사진 한 장만 붙잡고 하와이로 떠난 버들의 여정을 그려낸다. 요동치는 배에 몸을 맡긴 버들은 내내 뱃멀미에 시달렸다.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 떠나온 엄마에 대한 그리움 또한 버들의 안에서 쉴 새 없이 요동쳤을 것이다. 그런데도 버들이 견뎌낼 수 있었던 건, 버들에겐 ‘꿈’ 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포와에 가면 공부도 하고 돈도 많이 벌 거라는 꿈. 열심히 배우고 일하면 조선에 남겨둔 식구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을 거라는 꿈. 좋은 남편과 다복한 가정을 이루어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으리라는 그런 꿈이었다.

하지만 버들이 마주한 현실은 참담했다. 지주라고 소개받은 남편은 농장을 관리하는 일꾼이었고 버들은 공부는커녕 하루하루 고된 노동을 해야 했다. 집안을 돌보고 남편과 시아버지를 뒷바라지하면서도, 세탁 노동자로 일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겠다는 버들의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먼 땅에서 의지할 곳이라곤 남편 하나뿐인데, 죽은 애인을 잊지 못한 남편은 버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가까스로 관계를 회복하고 나니, 남편은 독립을 위한 전선에 직접 참전하겠다며 중국으로 떠나버렸다. 고향에서부터 동고동락한 친구 홍주는 버들 부부가 이승만의 가르침을 거스른다는 이유로 버들을 무리에 끼워주지 않았다.

어찌 보면 서글프고 암담한 신파 같은 이야기의 연속이다. 버들이 정말 신파 속 주인공이었다면, 엉엉 울며 비통해하는 데 그쳤을 것이다. 여인의 삶은 다 그런 거라고, 남편과는 그저 식구로 살 뿐이라며 체념했을지도 모른다. 친구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제 신념을 꺾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버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녀가 마주한 크고 작은 위기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자신을 피하기만 하는 바보 같은 남편을 꾸짖으면서도, 남편의 깊은 상처를 보듬어주었다. 가난에 울지 않고 스스로 일감을 찾아 바지런히 움직였다. 저를 외면한 홍주가 울면서 찾아왔을 때도 그녀를 내치지 않고 너그럽게 안아주었다.

그 모든 순간은 버들에게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버들의 진솔한 마음에 흔들린 남편은 버들은 아내로서 존중하게 되었고, 둘은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는 부부로 거듭나 소중한 아들을 얻었다. 열심히 모은 돈으로 사탕수수 농장을 벗어나 시내에 작은 가게를 차리고 독립운동 자금도 보탰다. 홍주를 용서한 버들은 남편의 부재로 인한 서로의 빈자리를 함께 채워나갔다. 버들과 홍주는 합심하여 열심히 일했고 자녀들을 길러냈다. 그리고 마침내 번듯한 세탁소를 운영하는 사장으로 거듭났다.

하와의 이주의 역사는 가슴 쓰린 사건이지만,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이를 마냥 아픈 역사로 남겨두지 않는다. 어려운 시절을 견뎌 냈던 평범한 사람들의 꿈과 노고를 조명함으로써, 그들이 하와이 이주라는 역사를 한국 역사 속에서 의미 있는 전환점으로 만든 주역임을 일깨워준다. 절망 속에서도 낯선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사람들은 나라를 빼앗긴 무기력한 사람들이 아니었음을, 그들은 인생의 굴곡을 터닝 포인트로 만들어낼 만큼 강인했음을 기억할 수 있게 해준다.

작품 소개

제목: 「알로하, 나의 엄마들」

저자: 이금이

출판사: 창비

출간일: 2020.03.25

정선희 작가
서강대학교 사학•신문방송학 학사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연극영화전공 석사
교보문고 스토리 에이전시 소속 작가
소설 <연인 광복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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