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선택들

누구에게나 어려운 순간이 찾아온다. 나의 노력과는 별개로 자꾸만 상황이 안 좋아지는 것만 날들이 있다. 정말 열심히 한 것 같은데,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았는데, 무겁게 가라앉는 현실을 체감하면 버겁게 느껴진다.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제각기 반응한다. 포기하거나 도망치기도 하고 누군가를 원망하기도 하며, 어떻게든 극복하려 애를 쓰다 옳지 않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절망 속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침착하게 되짚어보고 그 일을 꿋꿋이 밀고 나가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모두가 자신의 선택을 비웃고 답답하게 여길지라도 흔들리지 않고 그저 최선의 행동을 묵묵히 해나간다. 그렇게 소년 윌리엄은 가뭄으로 바짝 마른 세상을 구해낸 영웅이 되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바람을 길들인 풍차 소년>은 절망을 마주한 사람들의 다양한 선택을 보여준다. 2001년 아프리카 말라위는 연이은 홍수와 가뭄,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로 극심한 기근을 겪고 있었다. 미라처럼 비쩍 마른 옥수수를 온 가족이 힘을 합쳐 수확해도 3개월을 채 버티기 힘든 양만 남는 상황이었다.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이어지자 사람들은 저마다 선택을 했다. 돌아가신 조상에게 비를 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고 강도질을 하거나 죽음을 무릅쓰고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통령이 농민들을 버리지 않을 거라고 끝까지 믿는 사람도 있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식량난을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사람들은 굶어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소년 윌리엄은 손에서 공부를 놓지 않았다. 농사일을 도와줘도 힘들 상황에, 밭에서 도망쳐 학교로 숨어들었다. 학비를 내지 못해 출입할 수 없는 도서관에서 남몰래 책을 읽고 폐차장의 온갖 고물들을 헤집고 다녔다. 급기야 가문에 유일하게 남은 재산인 아버지의 자전거를 분해하여 재료로 쓰게 해달라고한다.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도 아들의 공부를 지지했던 아버지는 ‘바람으로 물을 끌어올 수 있다’라는 꿈같은 소리만 반복하는 아들에게 결국 화를 내고야 만다.

“저는 꿈꾸지 않아요.”

사람들은 윌리엄의 꿈같은 소리를 흘려듣는다. 아버지는 머리끝까지 화를 내며, 꿈에서 깨어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영화 속 윌리엄의 얼굴은 ‘꿈꾸는 사람’의 표정과는 거리가 멀다. 윌리엄은 환상에 젖어있는 희망찬 소년이 아니다. 윌리엄 역시 누구보다 깊은 절망을 느낀다. 돈 때문에 자신은 더 이상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었고 누나는 집을 떠났으며 부모님은 늘 시름에 가득 차 있다. 자신의 친구였던 개가 굶어 죽자 제 손으로 그를 묻어줘야 했다. 그런 윌리엄이 어떻게 마냥 환상에 빠져있을 수 있을까. 윌리엄에게는 막연하게 꿈이나 꿀 여유가 한순간도 없었다.

다만, 소년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아프리카에 유일하게 풍족한 자원인 바람을 동력으로 활용하면, 물을 길어와 농사를 지을 수 있고 더는 굶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윌리엄에게는 허황된 꿈 대신 분명한 목표와 뜻이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소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학비를 내지 못해 교장에게 모욕을 당하고 아버지에게 혼쭐이 나도 책을 읽고 고물을 조립해갔다. 마을을 떠나자는 주변의 부추김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져도 윌리엄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택했다.

사실 윌리엄의 성공 뒤에는 아버지 트라이웰과 어머니 아그네스의 부단한 노력 또한 있었다. 누군가는 메마른 땅에 의미 없는 쟁기질을 해 대며, 윌리엄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트라이웰의 모습을 한심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윌리엄은 본질적으로 부모의 성정을 물려받았다. 트라이웰과 아그네스는 가난한 살림에도 어떻게든 딸과 아들을 학교에 보내려 애썼다. 사람들은 똑똑한 아이들은 마을을 떠날 뿐이라며 이들의 선택을 비웃었지만, 부부에게 공부란 아이들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부부는 굴하지 않고 아이들을 뒷바라지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아그네스는 공부의 힘을 믿었고 트라이웰은 결국 아들에게 자전거를 내어주었다.

그 결과, 희망이라곤 한 포기도 없던 황폐한 땅에는 커다란 풍차가 우뚝 설 수 있게 되었다. 바람이 불자 풍차가 돌아갔고 기적처럼 샘에서는 물이 솟아 나왔다. 생명을 담은 물이 메마른 땅을 적시자, 이윽고 푸른 싹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렇게 황폐한 마을은 푸른 수목이 우거지게 되었고 윌리엄의 풍차는 기적의 상징이 되었다.

최선은 결국 최고가 된다

‘세상을 구한 영웅’이라 하면 초인적인 힘이나 남다른 재능을 기대하게 된다. 그 정도는 되어야 위기를 극복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이끌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바람을 길들여 세상을 구원한 자는 엄청난 영웅이나 거대한 힘을 가진 세력이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해냈던 어린 소년이었다. 그는 주변의 변화를 지켜봤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정한 뒤에는 포기하거나 물러서지도 않았다. 그 최선의 행동은 결국 최고의 결과로 이어졌다.

이제 마무리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면 사람의 마음은 흔들리기 마련이다. 후회가 밀려와 뒤를 돌아보게 되고 빨리 이 순간이 끝났으면 하는 바람을 품기도 한다. 꿈같은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슬쩍 고개를 내밀지도 모른다. 이 길이 맞는지, 내 방법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새삼스레 머릿속을 어지럽히기도 한다. 그럴 땐 한 번 윌리엄의 방식을 따라 봐도 좋을 듯하다. 주변과 함께 흔들리기보다는 묵묵히 내가 해온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보는 것이다. 그 노력이 가장 아름다운 마무리로 이어지는 순간은 반드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작품소개

제목 바람을 길들인 풍차 소년(The Boy Harnessed the Wind, 2018)

감독 치웨텔 에지오포

내용 2001년 아프리카 말라위, 극심한 가뭄과 식량난에 빠진 마을에 살던 소년 윌리엄이 고철을 모아 풍차를 만들어 마을을 구원해내는 이야기.

정선희 작가
서강대학교 사학•신문방송학 학사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연극영화전공 석사
교보문고 스토리 에이전시 소속 작가
소설 <연인 광복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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