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끝을 아름답게 하는가?

어느덧 11월이다. 가을은 깊어가고 열심히 한 해를 보낸 모두가 하나둘 결실을 거두어가는 시기이다. 한 편으론,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휩싸이고 남은 한 해를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초조한 이들은 수험생일 것이다. 찬란한 10대를 다 바쳐 공부에 매진해 온 학생들의 눈앞에는 수능이라는 거대한 문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학생들은 남은 날들을 헤아리며,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유종의 미’라는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몇 가지 질문들이 떠올랐다. 유종의 미가 말하는 ‘아름다움(美)’이란 무엇일까? 모든 것에는 끝이 있기 마련인데, 그 마지막을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가 따로 있는 것일까? 어떤 마지막이 아름다운 마무리로 남게 되는 걸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천선란 작가의 소설 <천개의 파랑>을 권하고 싶다.

“고작 이틀에서 14일로 삶을 연장한다고 뭔가 달라질까?”

<천개의 파랑>은 동물과 로봇, 그리고 인간 사이의 아름다운 연대를 담아낸 작품이다. 더는 달릴 수 없어 안락사가 확정된 경주마 ‘투데이’와 그 경주마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왔으나 폐기 처분을 앞둔 로봇 기수 ‘콜리’, 그리고 콜리를 고쳐 새로운 삶을 선물한 고등학생 ‘연재’가 그 주인공이다.

투데이는 억대의 몸값을 자랑하던 스타였지만, 치료도 받지 못하고 달려온 탓에 이제는 경주마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콜리는 무리한 속도로 달리는 투데이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말에서 떨어져 온몸이 부서졌다. 투데이는 아직 어린 말이지만, 다시 달릴 수 없다는 이유로 안락사 대상이 되었고 부서진 로봇인 콜리에게는 폐기 처분이 내려졌다. 그런 콜리의 앞에 연재가 나타났다. 연재는 자신의 용돈을 전부 털어 고철에 가까운 로봇을 사들이고 열심히 고쳐 새 삶을 주었다.

인생의 2막을 맞은 콜리와 달리, 투데이는 이틀 뒤에 안락사를 당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콜리를 통해 투데이의 사연을 알게 된 연재는 주변 사람들과 힘을 합쳐 투데이의 안락사를 2주 뒤로 미루기 위해 애쓴다. 힘차게 달릴 때 가장 행복해했던 투데이를 위해, 마지막으로 한번 더 주로를 달리게 해주기 위해서이다. 처음 연재의 부탁을 받은 어른들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정해진 죽음을 앞둔 말에게 이틀과 14일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되묻는다. 하지만 연재는 14일은 무언가를 바꾸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답한다.

고작 이틀에서 14일로 삶을 연장한다고 뭔가 달라질까?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길까?”

(…)

하지만 연재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당연하지. 살아간다는 건 늘 그런 기회를 맞닥뜨린다는 거잖아. 살아있어야 무언가를 바꿀 수 있기라도 하지.”

– 천선란, <천개의 파랑>, p.261 –

그리고 그 14일 동안 정말로 기적이 일어났다. 투데이는 재활 운동 끝에 적절한 속도로 달릴 수 있게 됐고 투데이의 마지막 경기를 본 사람들은 경주마의 실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이어갔다. 그렇게 안락사를 앞두었던 투데이는 새로운 삶을 얻었다. 원하는 속도로 달리고 초원 위에서 마음껏 하늘을 바라보는 날들을 선물 받았다. 고작 이틀이 2주가 되었지만, 그 시간 동안 각기 다른 사람들을 힘을 합쳤고 그 결과 한 생명의 삶을 지켜낼 수 있었다. 14일은 무언가를 바꾸고 아름다운 결말을 지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작가 노트에 남겨진 이야기

<천개의 파랑>은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 수상이다. 작가 노트에 따르면, 작가가 본래 한국과학문학상에 응모하려던 작품은 다른 소설이었단다. 하지만 완성을 목전에 두었을 때, 그동안 쓴 소설이 가짜처럼 느껴져 더는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고 한다. 그때가 벌써 9월 중순,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의 마감일이 11월 중순이었으니 두 달도 남지 않는 시점이었을 것이다.

한국과학문학상은 SF소설을 매체에 발표하거나 단행본으로 출간한 지 2년 미만인 사람만 응모할 수 있다. 작가는 같은 해에 장편소설 <무너진 다리>를 단행본으로 출간하였기 때문에,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었다. 남은 시간 동안 다른 소설을 쓰느냐, 혹은 내년을 기약하느냐. 두 달 남짓한 시간 안에 장편 소설을 완성하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작가는 전자를 택했고 놀랍게도 짧은 시간 동안 장편 소설을 완성하여 그해 대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20년 한국과학문학상은 코로나의 여파로 취소되었다! 작년 이맘때, 작가가 다음 기회를 기약했더라면 우리는 이 아름다운 작품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작품 속 주인공이 곧 작가는 아니지만, 작품은 어떤 형태로든 작가를 닮는다. 각자의 고민과 고통을 안고 있던 주인공들이 함께 뜻을 세우고 서로를 위하며 포기하지 않았던 모습에서 작가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 그런 작가와 작품은 모두 아름다운 마무리를 맞이하였다. 아름다운 마무리가 무엇이라고 선뜻 정의내리긴 어렵지만, 이들의 이야기로부터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힌트는 얻을 수 있다. 지레짐작으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살아 있는 매 순간이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함께 고민하고 끝까지 나아간다면 우리 모두 유종의 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소개

<천개의 파랑>은 천선란의 장편 소설로,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정선희 작가
서강대학교 사학•신문방송학 학사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연극영화전공 석사
교보문고 스토리 에이전시 소속 작가
소설 <연인 광복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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