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안 돼 너는.”

11층에서 떨어졌는데 멀쩡히 살아남은 아이가 있다. 윗집 담뱃재에 온 집안이 화염으로 뒤덮인 순간, 열일곱 살짜리 언니는 기지를 발휘해 동생을 물에 적신 이불로 감싸 창문 밖으로 던졌다. 창밖에 있던 한 아저씨는 몸을 던져 떨어지는 아이를 받아냈다. 평일 오후 3시, 순식간에 일어난 화재에 대부분의 주민들은 대피하지 못했다. 아이를 받아낸 아저씨의 다리는 으스러졌고 아이를 구해낸 언니는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아이는 살아남았다.

한 생명을 살려낸 언니의 기지와 의인의 희생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사람들은 살아남은 아이에게 ‘기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기적처럼 목숨을 건진 아이의 미래를 응원했다. 아이가 누구보다 제 삶을 소중히 여기기를, 감사한 마음으로 살기를 바랐다. 그렇게 아이의 행복한 앞날을 기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말 아이가 행복하길 바랐을까?

사고로부터 삼 년이 흘렀을 때, 아이는 여전히 아홉 살 꼬마였다. 친구들과 함께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타며, 큰소리를 지르기 마련인 어린아이였다. 그 바람에 산책하던 개가 놀라서 깨갱 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개를 산책시키던 할아버지는 노여운 얼굴로 아이에게 말했다. “얘, 너 그러면 안 돼. 그러면 안 돼 너는.” 왜 할아버지는 그 아이에게 ‘너는’ 그러면 안 된다고 말했을까?

소설 <유원>의 주인공 유원은 아직도 ‘11층 이불 아기’라고 불린다. 훌쩍 자라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유원은 늘 ‘마땅한 죄책감’에 짓눌려 살아왔다. 사람들은 유원이 언니의 몫만큼 두 배는 더 행복하게 살라고 말했다. 동시에, 어떤 사람들은 유원에게 ‘너는 그러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 속에서 유원은 행복할 수도, 행복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유원은 그렇게 모순투성이인 마음을 안고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행복

사람에게는 누구나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행복추구권은 헌법에서도 보장한 권리이다. 하지만 <유원>을 읽다 보면, 우리가 행복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일종의 선입견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큰 사고의 피해자나 생존자, 혹은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행복’에 대해 무척 낯설어한다. 행복에 어떤 조건이 있다면 그들은 행복하기 위한 조건을 상실한 17사람이라 여기는 것이다.

“그날 이후, 이전에 나를 몰랐던 사람들조차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나를 위로하고 축복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웃을 때면 생전 처음 보는 풍경처럼 낯설어하고 약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 행복을 바랐다면서도 막상 멀쩡한 나를 볼 때면 워낙 뜻밖이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듯 당황했다.”

백온유, <유원>, pp.103-104 –

사람들은 유원이 웃을 때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너무도 멀쩡하게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유원을 보면, 낯설고 이상하게 여겼다. 그 모습은 비극적 생존자의 ‘생존자다운’ 모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참 모순된 일이다. 사람들은 피해자가 사고의 아픔을 극복하길 가슴 깊이 바라면서도, 정작

그들이 행복해 보이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한다. 어쩌면 사람들에게 유원은 영영 행복해서는 안 되는 아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원은 살아남은 ‘사람’이다. 이 땅에 살아 숨 쉬는 사람인 이상, 누구보다 충실히 제 삶을 살아낼 자격이 있다. 유원이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의무가 있다면, 그 감사한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갈 권리 또한 있다. 유원이 누군가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면, 유원 역시 누군가를 미워할 수도 있다. 어제는 죽은 언니를 향한 죄책감에 울었더라도 오늘은 친구와 햄버거를 먹으며 소리 내어 웃을 수도 있다. 하루 동안 다른 사람보다는 나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볼 수도 있다.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평범한 삶이 그러하다. 그 지극히 평범한 삶이 유원에게는 압박이다. 유원은 그러면 안 되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온전히 나의 몫

살아남은 유원은 수현을 만났다. 제 몫만큼 행복하기도 힘든데, 언니 몫까지 두 배로 행복하게 사는 게 말이 되냐고 대신 소리쳐 주는 친구를 만났다. 그런 수현과 함께하며, 유원은 삶을 짓눌러온 죄책감을 조금씩 덜어내기 시작한다.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삶에 과중한 의무나 짐을 지울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죽은 언니만큼 모범생이 될 수 없고 자신을 살려준 아저씨의 기대처럼 의사가 될 수 없어도 괜찮다. 그렇게 유원은 온전한 제 삶을 찾기 위해 한 걸음 나아가게 된다.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의 내면에도 유원처럼 어떠한 상처가 있을 것이다. 그 상처는 때로는 두려움으로, 때로는 죄책감의 형태로 나타나 현재의 나를 옭아매려 든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를 짓누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현재 우리의 행복을 좌우할 수는 없다. 나의 행복은 과거의 기억이나 타인의 판단으로 결정될 수 없다. 삶의 중심은 온전히 내가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행복 또한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주인공과 함께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그것이 성장 소설을 읽는 매력이다.

작품 소개

백온유의 장편소설 <유원>은 사고의 생존자 유원이 새로운 친구 수현을 만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내용을 담아낸 성장 소설이다. 2019년 제1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다.

정선희 작가
서강대학교 사학•신문방송학 학사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연극영화전공 석사
교보문고 스토리 에이전시 소속 작가
소설 <연인 광복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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