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화면 속에서

처음 이 영화를 보던 날이 생생하다. 미세먼지 없이 맑던 겨울날이었다. 오랜 시간 지하철을 탄 뒤 영화관까지 걸어가는 내내 생각보다 추운 날씨에 코트만 입고 나온 걸 후회했다. 간신히 따뜻한 영화관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았지만, 영화가 시작되자 더욱 심란해졌다. 먼 길을 보러 온 영화인데, 그 영화가 너무 이상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화면, 일그러진 초점, 영어와 불어가 뒤엉키는 오디오까지. 영화의 시작은 혼돈 그 자체였다. 스크린과 객석 사이가 가까운 데다 정신없이 흔들리기까지 하니 멀미가 날 것만 같았다. 그래도 참아야 했다. 같은 과 선후배들이 모인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이게 뭐야?’라는 머릿속의 외침을 억누르고 스크린을 응시하고 화면에 적응하려 애를 썼다.

고흐의 심상을 담아낸 듯 일그러진 화면에 익숙해지자 비로소 고흐가 바라본 세상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세상을 고스란히 담아낸 고흐의 그림이 보였다. 그림을 그리는 고흐의 표정이 보였다. 처음에는 이상하고 낯설어서 피하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한 번 더 대상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소통의 시작이었다.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고흐의 마지막 나날을 담아냈다. 사실, 고흐의 삶은 제법 익숙한 소재이다.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화가, 동생 테오와의 관계, 친구 고갱이 떠나자 귀를 잘라 보냈다던 광기 어린 사건까지. 이토록 친숙한 소재를 다루었음에도, 영화의 독특한 연출 방식은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핸드헬드(Handheld: 카메라를 삼각대에 장착하지 않고 손에 들거나 어깨에 메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 기법으로 촬영된 화면은 쉴 새 없이 흔들리고 극단적인 클로즈업(Extreme Closeup)은 관객을 어지럽게 느껴진다. 롱테이크(Long-take)는 흔들리는 화면을 천천히, 크게, 끝까지 응시하게 만든다.

하지만 낯선 연출이라는 장벽을 이겨내면 관객들은 비로소 고흐의 내면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누군가는 고흐를 불행한 운명에 휘둘렸던 인물로 기억하겠지만, 영화 속 고흐는 슬픔에서도 기쁨을 느낄 줄 알고 질병을 원동력으로 삼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낯섦을 극복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대상, 영화의 연출은 고흐의 삶에 대한 은유이자 낯선 것을 마주하는 인간의 힘을 이야기한다.

“당신은 미치지 않았어요.”

고흐는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화가이지만, 정작 고흐와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고흐의 그림을 불쾌하고 흉한 것으로 여겼다. 물감을 덕지덕지 덧바른 고흐의 그림을 보며 ‘이게 그림이냐?’고 되물었고 스스로 화가라고 말하는 고흐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사람들은 고흐의 그림을 원하지 않았고 이상한 그림만 그려대는 그를 싫어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낯선 무언가를 거부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된 행위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은 생존을 위해서 주변 상황을 잘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존재는 곧 위협적인 요소가 된다. 따라서 낯선 것은 경계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물감이 마르기도 전에 덕지덕지 덧바르고, 괴상한 선을 그려대는 고흐의 그림은 당대의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생경한 것이었다. 그림은 밖에서 그려야 한다며 자꾸만 뛰쳐나가고, 친구에게 준다며 귀를 자르는 고흐는 낯설다 못해 두려운 존재였다. 사람들은 고흐를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고흐를 똑바로 마주한 사람이 있었다. 고흐가 머무른 요양원의 사제이다. 사제 역시 처음엔 고흐를 불쾌하게 여겼다. 그저 고흐가 요양원에서 나가도 될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 사제의 임무이기에, 의무감으로 고흐와 면담을 시작했을 뿐이다. 그는 광기에 사로잡혀 괴상한 그림만 그려대는 고흐를 이해하지 못했고 화가의 재능을 신이 주셨다고 주장하는 고흐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나 대화를 거듭하면서, 사제는 고흐가 단순한 미치광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고흐는 사제만큼이나 신학에 밝았고 자신의 삶과 그림에 대해 똑바르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결국 사제는 고흐를 요양원에서 나갈 수 있게 해준다.

요양원에서 나온 고흐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마지막 나날을 보낸다. 그곳에서 고흐와 진실한 친구가 되어준 의사 가세를 만났고, 80일 동안 무려 75점의 그림을 그려낸다. 가세의 초상화를 그리는 고흐는 누구보다 행복해 보인다. 가세는 그런 고흐를 향해, ‘당신은 미치지 않았다’고 말해준다. 고흐는 자신의 내면을 바라봐 준 친구 가세를 향해 환하게 웃음 짓는다.

낯설지만, 마주해보기

시작은 호의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사제는 고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결과, 사제는 누구보다 차분하게 제 삶을 성찰하는 고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제가 고흐를 마주하지 않았더라면, 고흐는 계속해서 요양원에 갇혀 지내야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의 수많은 유작을 만나볼 기회조차 잃었을 것이다. 이처럼 소통과 변화의 시작은 ‘낯섦’을 극복하는 데서 찾아온다.

때로는 예기치 못한 급격한 변화나 난생처음 겪는 상황이 우리를 얼어붙게 한다. 하지만 무작정 겁먹을 필요는 없다. 우리의 내면에는 낯선 것을 마주 보고 견뎌낼 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항상 낯선 것투성이인 세상에서 살아왔다. 나이를 먹고 기술이 발전하고 시대가 바뀌며 우리는 늘 변화의 소용돌이 안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충분히 잘 해왔다. 처음 겪은 상황에도 잘 적응했고, 때로는 변화를 주도했으며, 위기를 기회로 삼으며 나아가왔다. 우리의 내면에는 낯선 것을 견뎌낼 힘이 분명히 있다. 한 번 더 용기를 내서 앞으로 한 발 내딛어보자. 그 끝에 아름다운 고흐의 작품보다 더욱 빛나는 무언가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소개

제목 고흐, 영원의 문에서(At Eternity’s Gate, 2018, 국내개봉: 2019.12.26.)

감독 줄리안 슈나벨

내용 프랑스 아를과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의 마지막 순간까지, 빈센트 반 고흐가 보낸 외롭고도 아름다웠던 마지막 나날들을 담아내었다.

정선희 작가
서강대학교 사학•신문방송학 학사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연극영화전공 석사
교보문고 스토리 에이전시 소속 작가
소설 <연인 광복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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