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 시대의 가족

우리는 빠르고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다.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다른 나라, 3분이면 먹을 수 있는 조리 식품, 1초 만에 검색 결과를 보여주는 인터넷까지. 결과를 얻기 위한 시간이 줄어들면서 우리의 삶은 상당히 편리해졌다. ‘시간이 금’이라는 격언을 떠올려보면, 당장 결과를 내지 못하는 무언가에 매달린다는 건 비효율의 극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인스턴트’가 될 수는 없다. 아니, 세상에는 절대로 인스턴트로 대체되어서는 안 되는 가치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바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영화 <인스턴트 패밀리>의 엘리와 피트는 10대 소녀 리지를 포함한 세 남매를 입양하기 위해 위탁 가정을 꾸린다. 입양은 한 아이의 인생을 구원하는 훌륭한 일인데, 부부의 결정 과정을 보면 어쩐지 조마조마하다. 착실히 부모 수업을 받고, 위탁 아동 행사에도 참여하고, 멘토 부부에게 귀감을 얻으며 차곡차곡 부모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그들의 ‘숭고한 결정’이 사실은 조금 편하게 가족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허황된 꿈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엘리와 피트는 생활의 안정을 위해 오랜 시간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뒤늦게 아이를 낳자니, 아이가 다 자라기도 전에 백발노인이 될 것만 같다. 어느 정도 자란 아이를 입양하면 행복한 미래를 앞당겨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세상에는 가족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너무도 많으니까. 엘리와 피트는 이러한 생각 끝에 입양을 결심한 것이다.

가족이 된다는 것

<인스턴트 패밀리>는 ‘위탁 가정’이라는 낯선 가족 형태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작품 속 엘리 가족의 모습은 여느 부부가 가정을 이루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숭고한 마음으로 부모가 되기로 한 부부, 부부에서 부모가 되기 위한 노력 과정, 그 결실로 만난 사랑스러운 아이들, 그리고 그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악마로 변하기라도 한 듯 절대 부모의 뜻에는 따르지 않는 모습들까지 말이다.

처음에 두 부부는 마치 히어로가 된 기분이었을 것이다. 마약에 끊임없이 손을 대 감옥에 가 있는 친엄마와 보조금만을 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있던 위탁 부모들의 손에서 세 남매를 구해냈으니 말이다. 자신들이 사랑을 베풀면, 아이들은 당연히 따라와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현실에는 기껏 깨끗하게 준비한 방을 시커먼 색으로 도배하고, 정성스레 준비한 식사 대신 감자 칩을 달라고 악을 쓰며, 자신과는 말도 섞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남들과는 포옹까지 서슴없이 하는 아이들이 있을 뿐이다.

부부는 따뜻한 미소로 선물을 잔뜩 안겨주며, 언제나 아이들이 마음을 열까 조급해했다. 비교적 평화롭게 지내다가도 다시금 악을 쓰는 아이들을 보며, 엘리와 피트는 자신들의 노력이 매번 허사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지쳐갔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천천히 부모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이들과 길고 지루한 일상을 함께 견뎌낸 뒤에야, 아이들은 부부를 ‘엄마,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엘리와 피트는 그 순간 깨닫는다. 가족이 되는 과정은 인스턴트 음식을 데워먹듯 편리하고 빠르게 해치워 버릴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 깨달음 뒤에야 부부는 비로소 부모가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우린 네 곁에 있을 거야.

현실의 우리는 가족이길 포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게다가, 가족의 모습 역시 전통적인 ‘4인 가족’의 형태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1인 가정, 딩크족 부부, 다문화 가정, 입양 가정뿐 아니라, ‘가족’이라 불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법적 가족으로 인정해 줄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가족을 가족답게 만드는 ‘가족의 본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할 수 있다.

사춘기를 겪는 리지는 여전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믿고 싶었던 듯하다. 그래서 엘리와 피트를 부모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친엄마 카를이 출소하자 곧바로 엄마에게 돌아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리지를 부추기던 카를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다. 엄마에게 두 번이나 버림받은 리지를 품어준 사람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엘리와 피트였다. 이들은 차마 부부를 따라갈 수 없다는 리지를 설득하려 애쓰며, 리지의 앞날에 펼쳐질 모든 순간을 함께 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한다. 축구 시합, 예상보다 낮은 성적, 졸업식, 대학 입학, 결혼식 등 그 모든 순간에 자신들이 함께 있을 거라고. 때로는 서로의 바람대로 삶이 흘러가지 않더라도, 그래도 우리는 네 곁에 있을 거라고.

얼핏 진부해 보이는 대화가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이들이 ‘가족의 본질’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엘리와 피트는 어디까지나 위탁 부모일 뿐이기에, 위탁 포기 의사만 밝힌다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전화기를 들고 아이들을 데려가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끝까지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리고 가족은 ‘지긋지긋하다’는 이유로 포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엘리와 피트를 통해 답한다. 기꺼이 지루한 일상을 함께하며, 끊임없이 부딪히고 갈등하면서도, ‘그럼에도 함께 있는 것’이 가족이라고.

엘리와 피트, 그리고 리지는 ‘가족’의 환상에서 깨어났다. 이는 혈연은 더없이 숭고하다는 전통적인 환상일 수도, 과거와는 달리 자주적인 선택으로 가정을 꾸렸다는 현대적인 환상일 수도 있다. 그렇게 꿈에서 깨어난 이들은 진짜 가족이 되어갈 것이다.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순식간에 완성되는 인스턴트 음식과는 달리, 모두가 포기하지 않고 무수한 노력과 시간을 들여 만들어 낸, 그렇기에 더욱 끈끈한 진짜 가족 말이다.

작품소개

제목 <인스턴트 패밀리(Instant Family)>, 2018

감독 숀 앤더슨

내용 아이를 낳는 대신 10대 소녀와 그 동생들을 입양하게 된 엘리와 피트 부부가 여러 갈등 끝에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이야기.

정선희 작가
서강대학교 사학•신문방송학 학사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연극영화전공 석사
교보문고 스토리 에이전시 소속 작가
소설 <연인 광복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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