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함의 단단함

‘우리 SF의 우아한 계보’ 소설가 김초엽의 작품을 소개하는 대표적인 문구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김초엽의 작품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하는 문장을 만나지 못했다. 김초엽의 소설은 아름답지만, 마냥 예쁘지만은 않다. 대신, 작가의 작품에는 읽는 이를 압도하는 특유의 단단한 힘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김초엽의 작품에 아름답다는 말 대신 우아하다는 찬사를 보낸다.

우아함은 아름다움과 비슷한 의미로 쓰이지만, 사실 그 쓰임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아름다움 중에서 특정한 무언가에서 우아함을 느낀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은 정말 아름답지만, 그 하늘하늘한 자태를 두고 우아하다고 말하는 이는 많지 않다. 고급스러운 장신구로 치장한 모든 사람이 우아한 것도 아니다. 우아함에는 힘이 있다. 그를 마주한 대상을 압도하는 단단함에서 우러나오는 힘이다. 한쪽 귀퉁이가 깨진 박물관의 유물은 유구한 시간을 견뎌냈다는 숭고한 힘을, 한 인간의 사려 깊은 언행은 그 사람이 닦아왔을 내면의 따뜻한 힘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도자기에서, 누군가의 기품 있는 언행에서 우아함을 느낀다.

김초엽의 소설 역시 기존의 장르적 SF와는 다른 강렬한 힘을 지닌다. 금속처럼 차가워 보이는 SF의 장르적 외연과 대비되는 ‘관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바로 그것이다. 그 시선은 작중 인물들이 끝내 이해할 수 없는 상대방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김초엽의 작품 속 인물들은 이해는커녕 소통하기조차 어려운 대상을 마주하게 된다. 말이라도 제대로 통해야 서로에 대해 알아갈 수 있을 텐데, 극명하게 다른 언어와 사고체계를 가진 이들은 대화조차 나누기 어렵다. 그럼에도, 소설 속의 인물들은 어떻게든 상대에게 가닿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때로는 그 노력이 성공할 수도 있다. 관내분실의 지민은 죽은 사람들의 정보를 데이터화한 ‘마인드’를 통해 생전엔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의 삶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다. 지민은 살아생전 우울증에 걸린 엄마와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으며, 그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랐다. 더욱이 지민은 임신 중으로, 뱃속 아이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자기 자신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를 이렇게 키운 엄마에게 따져 묻고 싶어도, 엄마는 이미 죽었고 그녀의 사후 데이터마저 사라진 처지이다. 엄마와 결코 직접 소통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지민은 그런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이후에야 자신과 엄마, 동생과 엄마, 그리고 아빠와 엄마의 관계를 재조명해 본다. 그 끝에, 지민은 한 인간으로서의 엄마의 삶을 마주하게 되고 다시 만난 엄마의 마인드를 향해 “엄마를 이해해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그 노력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감정의 물성의 정하는 잡지 기자로, 각종 감정 자체를 조형화한 상품인 ‘감성의 물성’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비웃는다. 침착의 비누를 만지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설렘 초콜릿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SNS에 감성의 물성들을 올려대는 현상을 두고, ‘힙스터들을 대상으로 한 대사기극’ 쯤으로 여긴다. 그런 정하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우울, 공포, 증오 등 부정적인 감정까지 손에 쥐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그중 하나가 자신의 약혼녀 보현이다. 정하는 보현의 서랍장 위에서 수십 개의 ‘우울체’와 병원에서 처방받은 항우울제를 발견하며, 보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보현이 떠나버린 후에도, 정하는 그녀를 어설프게 이해할 뿐이다. 여전히 보현의 심정은 정하의 추측의 영역에 있다. 그렇다 해도, 정하는 포기하지 않고 보현이 떠난 방의 모든 풍경을 감각적으로 느끼기 위해 노력해본다. 그리하면 우울마저 손에 쥐고 싶어 했던 보현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듯이.

나와 다른 타자를 이해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내가 상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스스로 여길지라도, 여전히 상대의 깊은 심상과 의중은 추측의 영역에 있을지도 모른다. 지민이 발견해 낸 엄마의 삶 역시 극히 일부였을 뿐일지도 모른다. 정하가 아무리 곱씹어도, 보현의 깊숙한 내면에는 끝내 닿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김초엽이 그려낸 주인공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대방’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스펙트럼의 연구원 희진은 색채를 언어로 사용하는 외계의 행성에 불시착해, 주민 루이의 보호를 받으며 지낸다. 서로 다른 언어 체계를 사용하고 서로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 희진과 루이는 일반적인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루이는 자신보다 훨씬 약하고 무력하며 알아들을 수조차 없는 언어를 구사하는 이방인인 희진을 내치지 않는다. 희진이 지구로 돌아갈 때까지 그녀의 곁을 지킨 루이는 자신의 관찰 일기에서 희진에 대해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라고 묘사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마주하면 놀라워한다. 그 대상은 낯선 것이기에 외면하거나 무시하고, 더 나아가 없애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루이는 끝내 알아들을 수 없는 희진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며 ‘놀라워’했고 또 ‘아름다움’을 느꼈다. 희진을 대하는 루이의 모습은 상대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타자와 교감하고 화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간은 그런 힘이 있는 존재이다. 나와 다른 타인을 아름답게 여길 수 있는 존재이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아름다움이며, 단단함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이 우주의 우아한 구성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소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김초엽의 첫 단편집으로, 제2회 한국 과학 문학상 대상 수상작과 가작 수상작을 포함한 6편의 기 발표 단편과 1편의 미발표 단편을 엮어낸 책이다.

관내 분실제2회 한국 과학 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후 마인드 업로딩’이라는 독특한 과학적 소재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을 법한 딸과 엄마의 갈등과 화해를 설득력 있게 담아내었다. 여성의 삶, 엄마로서의 삶, 그리고 가족의 관계를 재조명한 작품이다.

감정의 물성먼 미래가 아닌, 당장 오늘 밤에라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접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SF이다. 감정마저 손에 잡히는 물질로 간직하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의 쓸쓸한 욕망을 그려내었다.

‘스펙트럼’ 서로 다른 언어 체계를 사용하는 두 생명체가 외계의 행성에서 만나는 이야기이다. 두 생명체는 언어적 장벽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런 서로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며 공존한다.

정선희 작가
서강대학교 사학•신문방송학 학사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연극영화전공 석사
교보문고 스토리 에이전시 소속 작가
소설 <연인 광복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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