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단순한 휴식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대답일지 모른다. 대부분은 일생의 목표로 자신의 집을 마련하는 것을 꼽는가 하면, 어느 동네에 사는지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정의되는 일도 허다하다. 현대인에게 있어 직장에 다니는 이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이유, 좋아하는 무언가를 포기하는 이유는 곧잘 ‘집’이라는 단어로 대체된다.

하지만 여기 그 질문에 정반대의 대답을 하는 한 사람이 있다. 매일 피는 한 갑의 담배와 단골 바에서 마시는 한 모금의 위스키를 위해, 자신이 사는 집을 기꺼이 포기하는 여자. 영화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다.

난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거야

순식간에 4500원으로 올라버린 담뱃값. 누군가에겐 푼돈이지만, 하루하루 가사도우미 일로 생계를 연명하는 미소에겐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결국 자신이 주로 피던 ‘레종 블루’ 대신 500원 싼 ‘디스 플러스’를 손에 넣은 미소. 설상가상으로 함께 올라버린 월세 때문에, 미소는 가계부를 작성하며 자신이 포기해야 하는 ‘무언가’를 고민한다. 45000원의 일당에서 밥, 세금, 약값, 월세, 위스키, 담배를 제하고 나면 마이너스 6000원 뿐. 자신의 하루 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12000원짜리 위스키와 4000원짜리 담배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녀는, 별안간 본인의 인생에서 집을 지우기로 결심한다. 월세를 없앤다면 미소에겐 4000원의 돈이 ‘남는다’. 그럼으로써 여전히 미소는 행복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월세방을 비우기로 결정한 미소는 대학 시절 밴드 생활을 함께했던 동료들의 집을 전전하며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미소에게 필요한 건 안락한 집과 안정된 생활이라고 훈수를 두는 선배에게, 미소는 말한다. “난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거야. 집이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영화 내내 미소는 극의 주인공이자 여행자로서 주변인들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좁은 집에서 시부모를 모시며 하루종일 맞지 않는 집안일에 시달리는 친구. 월급의 대부분을 신혼집을 사는데에 투자했지만 이혼 후 쓸쓸히 살아가는 후배. 누구보다 넓고 화려한 집에 살지만 남편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는 선배. 비록 그들에겐 집이 있지만, 여행 가방을 끌고 다니며 자유로이 움직이는 미소보다 결코 행복해 보이진 않는다. 영화는 한 잔의 위스키와 한 모금의 담배에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를 짓는 ‘미소’를 통해 우리에게 평범한 삶이란 무엇인지 되묻는다. 일상의 행복을 포기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N포 세대를 향한 따스한 시선

영화의 주인공인 미소는 극에서 누구보다 강렬하고 독특한 캐릭터성을 부여받는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집’의 가치를 제일 먼저 포기하는 당찬 성격뿐만 아니라, 한약을 먹지 않으면 금세 백발이 되어버리는 희끗희끗한 새치머리, 젊은 나이에 가사도우미를 하고 있는 설정까지 이해 못 할 것들로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가 미소에게 이런 과도한 설정을 부여함으로써 이 영화는 쓰디쓴 현실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로 완성된다. 영화 속에서 비추어지는 보증금과 월세비에 허덕이는 현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그대로 반영되어있지만, 주변에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독특한 설정의 미소는 어쩌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고 싶은 우리의 바람으로 탄생한 판타지 속 캐릭터일지 모른다.

영화 <소공녀>의 감독 전고운은 삶에 지친 N포 세대에 대한 위로의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N포 세대는 최근 등장한 신조어로, 힘든 경제적 상황 때문에 연애, 결혼, 취업 등을 포기하는 세대를 일컫는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위해 자신의 또 다른 꿈을 포기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N포 청년들은 영화 속 미소를 통해 궁궐 같은 저택과 신축 아파트에서 사는 삶 외에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깨닫는다. 만약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내가 포기했던 사소한 무언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되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적어도 감독의 의도에는 한 걸음 다가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과 소확행

이 영화는 분명 감독의 의도대로라면, N포 세대를 향한 위로의 메시지로서 다가와야 한다. 미소는 우리의 내적 욕망을 대신 실현해주는 자유분방한 판타지 속 캐릭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미소와 같은 젊은이들이 가득한 사회가 우리 가까이에 있다. 바로 일본이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의 저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현재 일본의 모순적인 두 상황에 주목한다. 경제적 불안과 세대 격차의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의 생활만족도와 행복지수는 최근 40년 동안 가장 높았다. 현재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구태여 안정된 직장에 다니지 않고 편의점과 옷가게 등에서 일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지만, 전혀 불행하지 않다. 친구를 만나 카페에 가고 취미생활을 즐기는 등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찾아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우리가 영화를 통해 보았던 미소의 행복한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이런 젊은이들의 ‘이질적 행복’에 대한 원인을 희망에서 찾았다. 역설적이게도, 내일의 희망이 없기 때문에 오늘 행복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인간은 어느 순간에 지금 불행하다라고 대답하는 것일까? 그것은 지금은 불행하지만, 장차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할 때라고 한다. 미래의 가능성이 남아 있는 사람이나 장래의 인생에 희망이 있는 사람은 지금 불행하다라고 말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 인간은 미래에 더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됐을 때 지금 행복하다라고 대답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리 없다.” 라는 생각이 들때, 인간은 지금 행복하다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을 때 비로소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안정적인 직장, 좋은 집을 위해 현재의 불행을 감수하는 이유는 먼 미래에 대한 투자의 개념에 가깝다. 비록 지금 힘들더라도 미래의 내가 행복할 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현재의 젊음을 쏟아부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일을 하더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떨까. 어쩌면 4만 5천원이라는 가사도우미 일당으로 매일을 살아가는 미소에게는,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부재했었을지도 모른다. 실현될 리 없는 꿈에 집착하는 것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일명 소확행을 추구하는 것이 마음 편한 것은 당연하니까. 이런 의미에서 영화 <소공녀>는 생각보다 훨씬 더 우리 사회의 아픈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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