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1945년 발간된 바네바 부시의 기념비적 보고서인 『Science, the Endless Frontier』는 이러한 2차 세계 대전의 유산과 교훈을 계승, 발전해 나가기 위한 제안이 담긴, 현대 과학정책의 시작을 알리는 문서였다. 보고서에서 그는 응용과학연구와 대비되는 소위 ‘기초연구(basic science)’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것을 제안했고, 과학이 보건, 국방, 경제를 아우르는 사회전반의 진보를 위한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음을 역설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기초연구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지원해야 한다면, 도대체 ‘어디에’ 지원을 해주어야 하는가?

주지하다시피 현대 과학기술정책은 ‘어떤 기관’에 ‘얼마의 금액’을 ‘왜’ 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와 결부되어 있다. 그리고 기관과 정당성의 문제는 그 기관이 시대적 요구에 맞는 지식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본적인 믿음에서 출발한다. 예컨대 연구대학과 연구소라는 기관의 부상은 2차 세계 대전 중에 형성되었던 군대와 산업체, 대학의 긴밀한 상호관계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대학과 연구소에서 정부가 필요로 하는 실질적인 지식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기저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를 방증하듯 1960년대까지 미국의 R&D 예산은 매년 평균 15%씩 증가했고, 동시에 대학과 연구소들은 당시의 군사적 관심이 집중된 분야였던 국방, 우주, 에너지 분야에서 막대한 ‘지식’들을 생산해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지식과 시대의 상응관계라는 자명하면서도 중대한 관계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먼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식기관을 매개로 반복적으로 나타나왔다.

고대부터 현대를 아우르는 오랜 역사 속에서 지식기관들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왔고, 때로는 지식기관의 등장이 그 시대의 역사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전후 지식의 생산에 큰 축을 맡았던 대학과 연구소는 전쟁이라는 시대적 요구와 맞물려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나, 이들 기관이 출현하기 먼 이전에도 지식기관들은 시대적 요구와 변화에 발맞추어 지식을 생산하거나 보전해왔다. <지식의 재탄생>은 이러한 지식기관들의 변천사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들은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에서부터 연구소에 이르기까지 6개 지식기관의 변화를 각 기관을 둘러싼 시대적 맥락 속에서 다루고 있다. 그들은 지식기관이 때로는 사회 지도자들의 후원을 통해 성장했으며(예컨대, 도서관이 그러하다), 때로는 사회 구성원들의 실질적 요구에 의해 새로이 형성되기도 했음을 주장한다(예컨대, 중세의 대학이 그러하다). 동시에, 지식기관에 의해 그 시대의 지식의 양태가 정의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시대적 요구와 필요성에 기인한 지식기관의 출현과 쇠퇴는 결국 그 시대의 대표성을 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각 기관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새로운 명분을 내세워 지식에 대한 이전의 관습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거하거나 재정의하면서 앞선 기관을 대체했다”는 저자의 말은 이러한 설명을 뒷받침한다.

지식기관을 통해 바라본 지식의 역사

지식기관의 역사를 통해 지식의 역사를 개괄하려는 저자들의 시도는 구체적인 시대 구분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이는 학문이나 지식의 ‘내용적 측면’을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접근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사실 구체적인 내용으로 지식의 역사를 다루려는 시도는 다분히 어려운 작업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당장 과학혁명기에 태동한 뉴턴역학에 의해 수많은 천문, 역학 이론과 사상들이 출현했는데, 이는 책 한 권에 담기 힘들 만큼 방대한 양일 것이다. 또한 시대적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내용과 이에서 파생된 지식들은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작업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시대별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지식들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부 지식들만을 취사선택해 시대 구분에 맞춰 넣는 것은 ‘지식의 역사’라는 포괄적인 주제를 다룰 때에는 지극히 주관적이며 불완전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저자들은 지식의 역사를 살펴보기 위해 이러한 위험한 접근방법을 취하는 대신 ‘지식기관’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을 택했다. 특히 ‘서구의 지적전통이 지식을 체계화하려는 노력과 투자에 기인한다’는 저자들의 주장을 수용할 때, 지식기관을 개괄하는 지식의 생산과 보존, 그리고 전달 과정을 살펴보면서 시대에 따른 지적전통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연구대학과 연구소

책에서 다루고 있는 6개의 지식기관 중에서도 연구대학과 연구소의 관계는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저자들은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지식의 역사가 전문학교와 연구소라는 두 갈래로 나뉘었으며, 이들 두 기관 모두 현재 지식기관으로서 남아있지만, 연구소가 점차 지배적인 기관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학자들이 연구대학이 부여하는 자율성 대신 연구소가 주는 경제적, 사회적 영향력을 따라 연구소로 이동했고, 동시에 연구소가 (학자들만의 전문적 학문 네트워크에 머무르는 연구대학과 달리) 대중과 시대의 요구에 지속적으로 부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이 상당 부분 타당하기는 하나, 이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연구대학과 연구소 간의 패권다툼은 현재에도 진행 중이고, 역사적으로도 연구소가 항상 우위를 점해왔다기보다는 패권의 이동이 변칙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00년대 초 미국에서 대학의 과학자들은 산업연구소로의 취업을 기피했으며, 연구소에서는 많은 급여를 주고 ‘대학과 유사한 환경을 조성해주며’ 과학자들의 유치에 나섰다. 지식 생산의 주도권은 대학이 쥐고 있었으며, 연구소는 ‘장기적으로 회사의 필요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바탕해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1차 대전을 통해 독일과의 교역이 중단되면서 이에 대한 대체재를 생산하고, 동시에 독일의 다수의 특허들이 산업체에 유입되면서 산업연구소가 크게 부상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연구대학과 연구소를 분명하게 구분 지을 수 있는 기준점이 상당히 모호해져 갔다. 2차 대전 이후 산업체가 아닌 대학부속 연구소들이 부각되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어 전기공학과 마이크로파를 연구하던 MIT에는 전시에 방사연구소(Rad Lab)가 설립되었고, 이는 전후 전자공학연구소(RLE)로 탈바꿈하면서 학부, 대학원과 상호 간 영향을 주고받았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MIT와 스탠퍼드에서 일어났던, 국방 연구기구와 대학의 분리를 주장했던 일련의 소요 사태들은 대학과 연구소가 얼마나 강하게 밀착되어 있었는지에 대한 방증이다. 한편, 1980~90년대에는 연구소, 특히 산업연구소에 대한 ‘대학살’이 일어났다. IBM은 1995년까지 연구 예산의 1/3을 감축했고, U.S. steel은 연구 부문을 폐지했다. 산업연구소의 기능은 연구를 통한 지식 창출이 아니라 제품개발에 집중하도록 재조정 되었고, 기업연구는 대학 등에서 외주를 통해 진행되었다.

이처럼 연구대학과 연구소는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상호작용하며 현대사회의 중요한 지식기관으로 자리해왔다. 물론 책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현재 연구소가 연구대학에 비해 우세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 연구소와 연구대학의 우위관계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변해왔다. 두 기관이 아직까지 지식 생산의 원천으로 남아있는 지금, 시대의 변동은 언제라도 대학을 연구소 위에 놓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연구소가 연구대학을 개혁하고 재창조할 것이라는 저자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그 근거를 단순히 앞선 지식기관들의 역사에서만 찾아서는 안 될 것이다. 즉, 새로운 기관이 앞선 기관을 대체하고, 기존 기관이 새로운 기관의 보조적 역할로 자리 잡았던 역사적 흐름이 연구대학과 연구소 사이에도 동일하게 반복되지 않을 가능성도 다분히 존재하는 것이다. 특히 연구대학은 기존의 중세대학에서 그 기능이 상당부분 변화되면서 이어져 온 기관이고, 연구대학과 연구소가 시기적으로 상당 부분 공유하면서 경쟁해오고 있다는 점은 이 두 기관의 관계가 앞선 지식기관들의 변화 양상과 다를 수 있다는 주장을 간접적으로 지지한다. 저자들 역시 연구소가 연구대학에 대해 우위를 보이게 된 경위를 결론 부분에서 다루고는 있지만, 그들의 주장에 대한 효과적인 논거로 삼기 위해서는 결국 연구소와 연구대학이라는, 현존하는 두 지식기관 사이의 관계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결론

지식기관들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그리고 지식기관이 지닌 고유한 특징은 그 시대의 지식의 양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부여해 주었다. 이 책에서는 서양과학사에 대한 논의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도,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도, 뉴턴역학도 상세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다만 저자들은 지식을 생산하고 전달하는 기관들에 초점을 맞출 뿐이며, 이러한 접근은 오히려 지식이 그것이 형성된 시대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부여해준다. 동시에 저자들은 서양 지식기관의 특징과 정체성을 부각하기 위해 때로는 동양의 지식기관을 비교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물론 저자들의 접근 방식이 완벽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관 자체에 대한 강조 때문에 이들 간의 변화에 직접적인 동인이 되었던 인쇄술의 발달을 비중 있게 다루지 못했고, 연구대학과 연구소 간의 관계파악이 심도 있게 이루어지지 못한 부분은 분명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지식의 재탄생>은 지식기관이라는 매개를 통해 지식과 시대가 상호작용하는 양상을 조망할 수 있는 접근법을 제시해주며, 현재까지 이어져온 지적전통의 방향성을 살펴보고 지식의 본질과 앞으로의 변화 양상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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