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였다. 내가 일하던 병원에서는 급박한 일이 터지면—환자 의식이 없어지거나 심정지가 오거나 갑자기 환자 상태가 안 좋아진다던가 하면—긴급 방송이 울린다. 하지만 내원객들이 동요하지 않게 하기 위해 병원 내의 방송은 대체로 무미건조하다. 어느 병원이나 똑같다. 당직에 찌들고 잡일의 무한 루프에 찌든 우리 인턴들은 그 방송을 듣고 또 힘든 일이 생겼다며 쓴웃음을 짓고는 원내 방송이 알려주는 병실로 달려간다.

달려간 병실에서 병원의 최하층 의사인 인턴이 하는 일은 흉부 압박이다. 심장 박동을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 흉골 위를 1분에 100~120회의 속도로 압박하는 일을 선배의사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환자들에게는 정말 절실한 일겠지만 의사들에게는 맞닥뜨리기 힘든 채혈, 소변줄 관리, 관장 등을 시행하면서, 육체적으로 힘든 근무시간을 감내해가면서, 의업의 길에 막 입문한 젊은 의사들은 환자들의 고통에 둔감해지고 무감각해진다. 환자를 의연하게 대하려면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감을 두어야 한다고 배우지만, 힘든 일에 찌든 신입 의사에게 환자에 대한 사명감이 깃들기는 어려운 일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오랫동안 라뽀(의료계에서 의사와 환자의 유대감을 일컫는 일종의 은어)를 쌓아온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거나 돌아가시는 등 감당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을 때 감정적으로 평정심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젊은 신참 의사들은 이 두 가지의 감정 속에서 방황하다가 끝내는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 길을 택한다. 그것이 차라리 거리감을 유지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환자가 병원과 의사에게 느끼는 서운함은 거기에서 기인할지도 모른다.

병보다 인간을 향해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은 그런 수련 과정을 거치고, 응급실에서 항상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마주하는 의사이다. 그는 그럼에도 인간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가 의대 재학시절 자살을 꿈꾸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도 우리와 같은 경험을 겪으면서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극한까지 몰린 사람들이 차고 넘쳐 그들은 매일 나를 찾아왔다. 그 수는 너무 많아 일일이 공감하기엔 벅찼다. 그것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 그곳의 분위기를 무감하고 무정하게 만들었다. (…) 지나치게 많은 죽음과 슬픔은 때로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게 했다”(7~8쪽).

하지만 그는 그렇게 무뎌진 감정에 죄책감을 느꼈다. “아무것도 벨 수 없는” 무뎌진 칼처럼 둔탁해진 마음이 다시금 그에게 환자로 시선이 가게 했다. 그렇게 그는 삶과 죽음의 기록을 한 자 한 자 써나간다. 자살시도로 입원한 중환자실에서 퇴원하자마자 바로 아파트에서 뛰어내려서 죽음을 택한 가장, 고통을 덜기 위해 아플 때마다 응급실에 찾아와 고통만 해결하고 퇴원하던 담도암 말기 환자. 그는 삶의 마지막 순간, 통증을 해결하기 위해 병원을 찾아오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다 교통사고를 내 다른 운전자를 죽였다. 그는 여기서 죽음의 아이러니를 본다.

“죽기 전 마지막 일상을 누린 그를 누가 비난할 수 있는가. 그가 마지막으로 욕심내 누린 하루를 비난해야 하는가. 그에게는 곧 떠나버릴 세상일 뿐이며 죽음 후에 남겨질 세상에 관해 망자는 관심이 없다. (…) 어차피 그것을 비난한다고 해도, 우리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 억울한 한 죽음이 있었고, 다른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 우리는 이 생명들이 얼기설기 위태롭게 얽힌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이해하고서도, 실은 어떤 죽음에 관해서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죽음에 관해 쉽게 왈가왈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42~43쪽).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 의료의 최전선 응급실. 무뎌졌던 감정을 죄책감으로 끌어올린 그는 본인이 마주하는 환자들 앞에서 그에 대해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다. 인간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직시하는 것이야 말로 수많은 삶과 죽음을 대하는 의사가 가져야 하는 중요한 태도임을 그는 이야기한다. 필자가 느끼기에 그래서 <만약은 없다>. 삶과 죽음을 직접적으로 마주하다 보면, 만약은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만약은 없다지만

 그리하여 그는 역설적이게도 만약을 꿈꾼다. 수필집의 제목은 <만약은 없다>지만, 그는 만약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본인이 처치에 있어 잘못한 점은 없는지 끊임없이 복기하기 위해, 그가 놓친 환자들의 시신 앞에서 홀로 생각에 잠기고(‘죽음을 마주하는 의식’), 오프까지 반납하면서 밤새 환자를 보고, 치열하게 보냈던 하루하루에 대해 회상하면서 다시는 같은 이유로 환자를 보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재미있는 일화들도 많다. 인턴의 잡일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인턴시절의 일화나, 의사들을 훈련병으로 모아두면 어떤 웃기는 일이 벌어지는 지를 이야기하는 일화도 있다. 의료계의 현실을 꼬집은 일화도 있다. 흉부외과 의사라고는 당직 교수 한 명 밖에 없어, 에크모(ECMO, 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or, 심장과 폐가 제 기능을 못할 때 대신 피를 펌핑해주고 산소를 넣어주는 장치)를 넣지 못해 사망할 수 밖에 없었던 어느 심정지 환자의 이야기. 에크모를 넣을 줄 아는 흉부외과 당직의가 상주 중이었다면 그 환자는 분명히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의료시스템의 병폐가 살 수도 있었던 환자를 죽인 것이다.

이 책은 21세기 대한민국 의료의 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장차 의사가 될 의대생들, 의대를 꿈꾸는 고등학생들에게 생각할 점을 던져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의업의 본질을 잊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써내려 갔다.

“이 글들을 (…) 쓰기 위해 나의 일부분을 헐어내야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그 무엇도 잊지 않기 위해 이 글들을 써내려 갔다는 것도.”(9쪽)

의사 김용훈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학사
성균관대학교 의무석사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