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H. 카 <역사란 무엇인가>

카의 위험한 줄타기

영화 <변호인>에서는 ‘부산 학림사건’, 즉 ‘부림사건’을 다루는 장면이 나온다. 부림사건은 1981년 전두환의 신군부가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대학생, 교사 등을 국가보안법과 계엄법, 집시법 등의 위반 혐의를 적용하여 기소했고, 법원은 5~7년 형을 선고한 조작 사건이다. 최병렬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공안 검사로서 기소를 맡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인이었다. 부림사건은 2009년 대법원 재심에서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이 났고, 2014년에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해서도 무죄 판결이 났다. 이로써 33년만에 완전히 무죄판결이 났고, 국가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도 2015년에 났다.

이 사건은 군부 독재 시절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들이 읽은 책들은 ‘빨갱이’들의 ‘불온서적’이 아니라 고전 중의 고전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변호인>에서도 이를 지적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변호인 中

검사: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이 책은 공산주의자이자 역사가인 E. H. 카가 저술한 책으로 일반학생, 노동자들에게 공산주의 혁명과 체제를 타당시하는 역사관과 그 사고방식을 포식케 할 위험성이 있는 불온 책자입니다. 따라서 본서를 소장 학습하는 사람은 공산주의 이론 학습에 관심이 있다는 판단을 가능케 해……. (중략)

변호인: 증인, 위에서 ‘이것은 빨갱이 책이다.’ 이라면, 책도 안 읽어 보고 감정을 쓰는 거 아닙니까?

검사: 지금 변호인은 추측에 의한 단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변호인: 내가 제대로 했으면 이러지도 않죠. 증인은 여기 보고서에 E. H. 카가 소련에서 오랫동안 산 공산주의자라도 써 놓았는데 맞지요?

증인: 예 조사해 보니까, 소련에서 오래 살았습니다.

변호인: 확실합니까, 소련 빨갱이?

증인: 확실합니다. 아니면 내 성을 갈겠습니다.

변호인: 뭐, 성까지 갈 필요는 없고요, 맞습니다. 소련에서 살기는 살았습니다. 그런데 뭐로, 와? 소련 사람도 아니면서 소련에서 살았는가? 그게 중요합니다. E. H. 카는 6•25 때 우리를 위해 참전한 우방 영국의 외교관이었습니다. 소련에는 영국 대사로 파견 나갔던 겁니다. 이 문서는 영국 대사관에서 보내온 전보입니다.

“에드워드 카는 런던에서 태어나서 캠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영국인으로 영국을 위해 헌신한 외교관이자 존경받는 역사학자이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공산주의 사상을 옹호하는 책이 아님을 밝힌다. 아울러 <역사란 무엇인가>가 한국 독자들에게 많이 읽혀지기를 바란다.” – 영국 외교부

– 영화 <변호인> 中에서

위에서 보듯이 E. H. 카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역사학자이고, 그의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는 역사사학에서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히는 책이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알지 못해도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을 들어 본 중고등학생들은 많을 정도로 이 책은 유명하다. 당시 부림 사건의 검사, 판사, 증인은 실제로 이 책을 읽어 보지 않은 듯하다. 저자가 소련에 살았다면서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책이라 단정하고 이 책을 읽은 청년들을 ‘빨갱이’로 몰았으니 얼마나 가당찮은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이 왜 이리 중요할까? 사실, 이 책은 역사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 역사학 도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역사 철학 도서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이 책은 로마 공화정, 러시아 혁명사, 항해의 역사 등과 같이 구체적인 특정 주제에 대한 역사학적 탐구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카가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역사학적 탐구 방법의 성격, 즉 역사학적 인식에 관한 내용이다. 한 마디로 역사학에 대한 학(學)이기에 ‘역사 철학’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카는 역사학의 인식에 관해 무엇을 다루는가? 한 마디로 역사 서술의 주관성과 객관성의 문제를 다룬다.

19세기는 실증주의(positivism)의 시대였다. 실제 경험적 증거를 찾는 시대였다. 다양한 영역에서 실증주의가 등장했고, 역사학에서는 독일의 역사학자인 랑케(Leopold Von Ranke)가 실증주의 사학의 대변자이다. 그는 편견이나 선입견 없는 사료 분석을 중시했고, 이를 통해 역사에 대한 객관적인 서술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실증주의 역사학에 대한 도전이 있었다. 영국의 역사학자인 콜링우드(Robin George Collingwood)가 대표적이다. 콜링우드는 ‘과거 그 자체에 대한 역사가의 사유’를 중시했다. 자연과학과는 달리 역사는 역사적 행위자들의 생각이나 동기를 직접적으로 지각할 수 없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그것들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가 불거진다. 역사가의 객관적 분석을 주장한 랑케와는 달리 역사가의 주관적 관점을 강조하는 콜링우드의 견해를 따른다면 ‘이것이 진실된 역사다,’라고 주장할 수 없다. E. H. 카는 콜링우드의 견해와 같은 견해를 극단으로 밀고 나아갈 경우, 즉 역사 서술에서 역사가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객관적인 역사 서술이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역사에 대한 실용주의적 입장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여기에서 E. H. 카의 문제의식이 시작된다. 역사 서술이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면 어떻게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물론 E. H. 카는 역사에 대한 콜링우드의 견해를 상당 부분 수용한다. 그래서 역사 서술이 주관적일 수 있음을 인정한다. 이것은 그럴 수밖에 없다. 카는 과거의 사실과 역사적 사실을 구별한다. 과거의 사실은 과거에 일어난 일이라면, 역사적 사실은 역사가가 서술하기로 선택한 사실이다. 여기에서부터 사실은 주관에 의해 오염된 것이다. 즉 역사적 사실은 순수한 사실로 존재할 수 없고 역사가의 관점이 입혀진 사실이 된다. 역사적 사실의 선택 순간부터 이러한 주관적 오염을 피할 수 없다. 과거에 수많은 사람들이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 의미 없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역사가가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가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은 중요한 것으로 선택하여 역사에 서술했다.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와 원로원에 대항해 내전을 일으킨 사실로 중요하게 평가된 것이다. 이와 같이 역사가가 사실을 선택해 해석(interpretation)이라는 옷을 입히기 때문에 발가벗은 사실(bare facts)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역사적 사실, 즉, 선택된 사실, 해석된 사실은 역사가의 주관적인 가치 개입이 이루어진 사실이다.

게다가 콜링우드가 주장했던 바와 같이 카도 역사적 행위자들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알 수 없기 때문에 ‘상상적’으로 이해해야만 한다고 한다. 역사가의 상상이 개입되는 순간 그것은 자칫하면 허구(fiction)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허구를 객관적이라 하지 않는다. 역사가의 상상력은 순전히 역사가 개인의 것인 한에서는 주관적일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상상적 이해는 ‘현재적 관점’에서의 해석이라는 단서 조항이 있다 하더라도 역사가의 주관을 허용하게 된다. 이런 생각들로 인해 카는 역사 서술의 주관성을 인정한다. 이런 부분은 다분히 콜링우드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카는 역사를 순전히 주관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콜링우드의 견해를 받아들일 경우 자칫 현재적 목적만을 위한 역사 해석이 특정한 시대에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역사 서술의 객관성과 주관성 사이의 줄타기가 시작된다.(역사학자인 김기봉 교수가 ‘줄타기’란 표현을 먼저 써서 아쉽기 그지 없다.) 한쪽으로 기울면 주관성을 놓치고, 다른 쪽으로 기울면 객관성을 놓치게 된다. 카는 자신의 위험한 줄타기의 기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역사를 ‘역사가와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 규정한 것이다.

‘역사가와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라는 표현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표현은 대구 시켜 이해할 수 있다. ‘역사가’는 ‘현재’에 살고 있고, ‘사실들’은 ‘과거’에 일어난 일들이다. 상호작용(interaction)은 서로 행위를 주고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현재의 역사가는 과거의 사실들을 해석하고, 과거의 사실들은 해석의 소재, 해석의 정합성 등을 계속해서 제공한다. 정당한 해석이 하나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새롭게 발견되고 선택된 사실들을 통해 ‘더 정당한’ 해석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측면을 실제 예를 통해 이해해 보자. 필자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광주사태’라 배웠다. 당시는 6공화국 시절로 군부독재의 연장선상에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많은 역사학자들과 시민들은 5•18의 진실을 찾기 위해 애를 썼고, ‘시민 반란’이 아닌 ‘민주화 운동’일 수밖에 없는 여러 증거 자료들을 찾았다. 진실을 위한 시민들의 투쟁은 결국 성공하여 5•18은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 불릴 수 있게 되었다.

출처: 5•18 기념 재단

여기에서 5공화국에서 5•18을 ‘광주사태’라 명명한 것은 역사를 왜곡한 것이다. 권력을 탈취해 지배 권력이 된 군사정부가 자신들의 과오를 숨기기 위해 그렇게 칭한 것이다. 소위 ‘가짜 뉴스’를 만들어 냈고, 당시에는 그것이 ‘사실’이자 ‘진실’인 양 여겨진 것이다. 아마도 E. H. 카가 콜링우드의 입장에 도사리는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역사 서술의 주관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현재의 목적을 위한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역사가 왜곡되어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과거의 진실을 입증해 주는 자료들이 발굴되고, 증인들의 진실된 증언들이 쌓이면서 5•18은 더 이상 ‘사태’나 ‘소요’ 또는 ‘반란’일 수 없었다. 객관적인 증거들이 스스로 말하고 있고, 정직한 역사가라면 이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객관적 사실들이 드러나고, 역사가는 이 사실들을 선택하여 다시 해석하게 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5•18은 민주화운동이라는 해석된 옷을 입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객관적 사료에 의해 밝혀진 것이므로 역사 서술을 객관적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의문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지만, 5•18과 관련된 사료들의 선택에서부터 역사가의 주관적 관점이 개입된다. 이미 사실은 가치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들은 어떤 가치의 옷을 입고 등장한 것인가?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자유, 평등과 같은 가치의 관점에서 선택된 것이다. 군부 독재가 시민들을 탄압했기 때문에 역사가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 가치의 관점에서 5•18을 민주화 운동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주관적 가치 개입이 있다면, 역사 서술은 주관적이라 해야만 하는 게 아닌가? 곧바로 이어질 당연한 질문이다. 사실 이 질문이 핵심이다. 카는 랑케보다는 콜링우드 쪽으로 기울어 있기 때문에 역사 서술의 주관성을 극복하는 것이 카의 핵심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객관성과 주관성 사이에서의 위험한 줄타기가 성공적인지, 역사의 객관성에 관한 그의 말을 들어 보자.

“여기서 나는 역사에서의 객관성(objectivity)이라는 잘 알려진 어려운 문제를 맞게 된다. 객관성이라는 말 자체는 오해되기 쉬운 데다가 입증되어야 할 문제를 안고 있는 말이다. 이미 지난 번 강연에서 나는 사회과학―물론 거기에는 역사학도 포함되지만―은 주체와 객체를 분리시키고 관찰자와 관찰대상 사이의 엄격한 분리를 강요하는 인식론에는 따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에게는 그들 사이의 상호연관과 상호작용의 복잡한 과정을 올바르게 다룰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역사의 사실들은 순수하게 객관적일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은 역사가가 부여하는 의미에 의해서만 역사의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에서의 객관성―만일 우리가 그 판에 박힌 용어를 여전히 사용하기로 한다면―은 사실의 객관성일 수 없으며, 오로지 관계의 객관성, 즉 사실과 해석 사이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관계의 객관성일 수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 한 가지는 카가 사실의 객관성을 부인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한 가지는 사실과 해석 간의 관계의 객관성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전자의 객관성은 이미 선택된 사실이 주관에 의해 오염된 사실이라는 점에서 부인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카는 대안으로 새로운 객관성, 사실과 해석 간의 관계의 객관성을 주장한다. 이에 덧붙여 말하는 것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관계의 객관성’이다. 그래서 카는 ‘나는 오히려 과거의 사건들과 서서히 등장하고 있는 미래의 목적들 사이의 대화라고 말했어야 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카가 말하는 사실과 해석 사이의 관계의 객관성을 이해하기 위해 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2장 ‘사회와 개인’에서 카는 ‘역사의 사실이란 사회 속에 있는 개인의 상호관계에 관한 사실, 그리고 개인의 행동에서 본인들이 의도했던 것과 자주 모순되거나 가끔 상반되는 결과를 생겨나게 하는 사회적 힘에 관한 사실인 것이다.’라고 하면서 사회적 힘을 강조한다. 한 개인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그런 관계 속에서 작용하는 사회적 압력이 개인적 행위의 동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카는 한 개인을 보기보다는 사회를 보고 있다. 사회로부터 독립된 원자적 개인보다는 이 원자들이 이룬 집단을 더 중요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가에게도 적용된다. 역사가는 개인으로서 역사 연구를 하지만, 역사가의 관점은 100% 완벽하게 개인적인 주관적 관점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 같다. 즉 역사가도 일정한 사회적 힘의 영향 아래에서 취한 관점이 된다. 그러한 사회적 힘은 사회의 운동 방향으로 이해된다.

E. H. 카가 크로체의 말을 빌려 ‘모든 역사는 당대사(contemporary history)’라고 한 것은 현재적 관점에서 역사를 보되, 그러한 현재적 관점은 현재 사회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즉 사회적 힘의 영향을 받고 있는 역사가의 관점이다. 그러므로 한 개인의 순전한 주관적 관점이라기보다는 당대 사회에서 일정하게 합의된 관점이라는 측면에서 이를 이해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관점이다.

카는 역사적 진보를 인정한다. 그러나 진보에 대한 그의 생각은 조야한 단계에서 발전한 단계로 단선적으로 진보한다는 것이 아니다. 마치 주가 그래프가 오르락내리락 하며 우상향 곡선을 그리는 것과 같이 역사는 쇠락과 퇴락의 시기도 거치고 발전의 시기도 거치며 나아가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진보의 관점에서 ‘사회적으로 합의된 관점’을 이해할 수 있고, 그런 합의의 기준이 미래임을 알 수 있다. 즉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를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끊임없는 대화’라 말했었어야 한다는 카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미래는 시간이 흐르면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치들을 실현해 가며 채워야 할 시간이다. 그 가치들은 보편적 가치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 가치, 즉,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과 같은 것들이다. 이런 가치들에 우리는 사회적 합의를 하고 있다. 물론 전근대 사회에 머물고 있는 국가나 공동체들도 있지만, 이러한 보편적 가치들을 부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역사가들은 합의된 가치의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한다. 좀 더 정확하게는 역사가들은 합의된 보편적 가치의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은 역사가 한 개인이 과거의 단편적 사실들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다. 이 대화는 미래 사회의 가치를 끌어와 현재적 관점에서 과거 사회와 대화하는 것이다. 역사가는 개인이지만 그의 관점은 사회적 힘 또는 시대 정신을 담지하고 있다. 미래에 도달해야 할 미완의 보편적 가치들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역사가는 개인의 자격으로서라기보다는 사회의 대변인 자격으로서 과거를 해석한다. 이제 상호주관적(intersubjective)이라는 점에서 객관성의 보다 약화된 의미가 드러난다.

카가 지향하는 객관성의 의미를 위와 같이 이해하면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합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이러한 종류의 객관성은 벌거벗은 사실의 객관성은 아니지만, 상호주관성이라는 측면에서 ‘개인-주관적’이 아니라, ‘사회-주관적’이라 할 수 있고, ‘객관성’에서 절대적 의미를 유보하면서도 그 의미를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상호 주관성에서 객관성을 이해할 때 카의 ‘위험한 줄타기’도 어느 정도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이명순
개논비연구소 대표
서울대학교 철학과 학사 석사
서울대학교 철학과 박사 수료
Boston University Visiting Scho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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