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정수 : 권력

미국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은 탄탄한 내용 전개 및 배우들의 호연으로 유명하다.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장면이 지나칠 정도로 많이 등장한다는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시청자들은 대체로 만족하는 모양이다. 2011년 방영된 시즌1만 하더라도 220만 명으로 시작했던 시청자 수는 꾸준히 상승하여 2017년 방영된 시즌7에서는 무려 1,200만 명을 돌파하였다. 2012년 이후 드라마 장르의 불법다운로드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음은 물론이다.

<왕좌의 게임>은 가상의 대륙인 웨스테로스의 지배권을 놓고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사투를 주된 내용으로 한다. 등장인물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각자 다르지만, 목적을 이루는 방법만은 섬뜩할 정도로 일치한다. ‘철 왕좌’로 상징되는 권력으로의 도달이 바로 그것이다. 핏줄과 인연은 권력의 앞에서 지극히 무력한 것처럼 그려진다. 결혼을 약속했던 집안이 주최한 연회를 즐기다가 그 자리에서 참살되거나, 십수 년 동안 함께 살아온 아내가 남편을 독살하는 아수라가 펼쳐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묘사는 권력정치, 즉 권력의 획득과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의 일면을 시대극에 걸맞은 형태로 재창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혹자는 정치의 부정적인 측면에만 지나치게 집중한 것은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그렇게 묻는 사람들의 뇌리에는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경청, 공정한 선거절차, 양보와 타협 같은 것들이 떠올라 있을 것이다. 사실, 정치만큼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개념도 없다. 정치에 대한 가장 유명한 정의는 미국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의 것이다 : “가치 있는 것을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것(authoritative allocation of values)”.

본격적으로 오늘의 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이 문구의 의미에 대해 간단히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흙과 자갈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금과 다이아몬드는 그렇지 않다. 이처럼 가치 있는 것들은 사람들의 욕심을 골고루 충족시켜 줄 만큼 수가 많지 않다. 달리 말하면, 그것들을 어떻게 배분하더라도 불만을 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한 배분 방식이 채택되었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강제되어야 한다. 그 점에서 권력과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정치의 이러한 속성을 잘 드러내는 고전으로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있다.

『군주론』은 권력을 새롭게 획득하여 군주가 되었거나, 기존의 군주로서 권력을 갖고 있는 자가 그 힘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논하는 저서이다. 저자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피렌체의 외교관이자 정치사상가로, 그의 생전에 이탈리아는 여러 개의 도시국가로 분열되어 있었으며 설상가상으로 프랑스 · 스페인 · 신성로마제국 등 다양한 외세의 압력을 받고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저술함으로써 이탈리아의 혼란상을 수습하고 통일을 이룩할 만한 인물에 대한 염원을 표현했는데, 그러면서도 당시에는 특이하다고 여겨질 만한 시각을 드러냈다. 도덕이나 윤리의 속박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정치영역에 대한 고찰을 시도했던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등 이전 사상가들의 저술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근대 이후의 정치사상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이하의 내용에서는 『군주론』의 문구를 통해 드러난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간단히 검토하고, 어떻게 이 책을 읽어야 할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도덕과 정치의 분리

지금이야 <법과 정치> 과목과 <생활과 윤리> 과목을 별도로 가르치지만, 르네상스가 태동하던 14세기만 하더라도 정치를 도덕과 별개의 것으로 보는 시각은 생소한 접근이었다. 그 시대에는 아직 그 둘이 분리되지 않았다고 이해하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정치와 윤리가 혼합된 형태의 사유를 최초로 체계적인 형태로 구현해낸 플라톤은 『국가』에서 바람직한 정체(政體)가 갖춰야 할 성질에 대해 논했는데, 그에 따르면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이데아의 세계를 투영한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플라톤이 상정하는 이데아의 개념에는 현실 정치 역시 모종의 절대적 질서를 따라야 한다는 당위성이 내포되어 있다. 그 후 마키아벨리에 이르기까지 정치가 구현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정치는 항상 윤리적 행위여야만 했다. 달라지는 것은 정치를 행하는 목적, 즉 그것이 기초하고 있는 윤리적 규범의 내용뿐이었다. 더욱이 중세 이후에는 종교가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게 되면서 정치와 종교윤리 간 결속이 한층 강화되었다.

‘도덕률에 의해 구속되는 정치’의 개념은 현실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중세 유럽 사회를 조직하는 기본 원리는 기독교 윤리였는데, 이에 따르면 정치를 행하는 자의 덕목은 겸손과 정직, 신에 대한 경건한 태도 및 이웃에 대한 선행이다. 그러나 위정자들이 느끼기에 윤리와 도덕보다는 언제나 무력이나 재력, 권모술수 등이 더 매력적인 수단이었다. 영토 확장을 위해 이웃 나라 왕과 왕자들의 사이를 의도적으로 이간질하는가 하면(프랑스 왕 필리프 2세), 자금난을 타개하려는 목적으로 우호 관계에 있었던 나라를 갑자기 공격하여 멸망시키는 일(제4차 십자군)이 공공연하게 벌어졌다.

마키아벨리는 현실과 동떨어진 정치사상의 허구성을 지적하였다. 『군주론』의 15장을 참고하자.

이제 군주가 자신의 신민들 및 동맹들에게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마땅한가를 고찰하기로 하겠습니다. 저는 많은 논자들이 이 주제를 논해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중략) 그러나 저는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유용한 것을 쓰려고 하기 때문에, 이론이나 사변보다는 사물의 실제적인 진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현실 속에 결코 존재한 것으로 알려지거나 목격된 적이 없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을 상상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것을 행하지 않고,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잃기가 십상입니다.

도덕적 당위를 가치판단의 준거로 삼는 정치사상은 실제 정치 상황을 반영하기에 무리가 있다. “현실 속에 결코 존재한 것으로 알려지거나 목격된 적이 없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에 대한 상상”이라는 표현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토마스 아퀴나스 등 이전 사상가들이 빚어낸 정치적 이론 틀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마키아벨리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가 귀속되는 도덕의 영역은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의 문제가 귀속되는 정치의 영역과 구별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 문제에 있어 윤리적 지침에만 의존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였다.

군주가 신민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익이다

기존의 인식 틀을 깨뜨렸다면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대안에 대한 고민이다. 정치가 윤리 및 도덕과 별개의 원리에 의해 작동한다면, 그 원리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본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군주론』 곳곳에서는 마키아벨리가 인식한 인간상(人間像)을 추론할 수 있는 서술이 눈에 띈다.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적인 데다 기만에 능하며 위험을 피하려고 하고 이익에 눈이 어둡습니다. 당신(군주)이 은혜를 베푸는 동안 사람들은 모두 당신에게 온갖 충성을 바칩니다 막상 그럴 필요가 별로 없을 때, 사람들은 당신을 위해서 피를 흘리고, 자신의 소유물, 생명 그리고 자식마저도 바칠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정작 그러한 것들을 필요로 할 때면, 그들은 등을 돌립니다.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베푸는 자를 해칠 때에 덜 주저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일종의 감사의 관계에 의해서 유지되는데, 인간은 악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취할 기회가 생기면 언제나 그 감사의 상호관계를 팽개쳐버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은 매우 단순하고 목전의 필요에 따라서 쉽게 움직이기 때문에, 기만자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속는 것을 항상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와 같은 서술에서 드러나는 시각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면, ‘인간은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라고 할 수 있겠다. 개별 신민들의 행동을 지배하는 원리가 이해관계라면, 그들을 통치하는 군주 역시 이 점을 고려하면서 정치를 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마키아벨리는 현실에 부합하는 통치술을 주문한다. 훌륭한 군주가 권력을 행사할 때 우선해야 할 것은 본인의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결정이 초래할 득실을 계산하는 일이다. 이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써, 발렌티노 공작 체사레 보르자(Casere Borgia)에 대해 마키아벨리가 언급한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자.

로마냐 지방을 점령한 후, 공작은 무능한 영주들이 그곳을 다스려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결과 그 지역은 도둑질, 싸움 그리고 온갖 불법적인 행위가 횡행하고 있었습니다. 공작은 그 지역을 평정하고 주민들을 복종시키기 위해서는 선정을 베풀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레미로 데 오르코라는, 잔인하지만 정력적인 인물을 그곳에 파견하고 전권을 위임했습니다.

레미로는 단기간에 질서와 평화를 회복했으며, 대단한 명성을 얻었습니다. 나중에 공작은 그 동안 (레미로가) 취해 온 엄격한 조치로 인해서 공작 자신이 인민들의 미움을 사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러한 반감을 무마시키고 인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이제껏 행해진 잔인한 조치는 모두 그가 시킨 일이 아니라 그의 대리인의 잔인한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적절한 기회를 포착하여 어느 날 아침 공작은 두 토막이 난 레미로의 시체를, 형을 집행한 나무토막 및 피 묻은 칼과 함께 체세나 광장에 전시했습니다.

부하를 이용하고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행태는 도덕적인 차원에서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이를 통해 정복지의 질서를 바로잡고 민심을 안정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마키아벨리가 보기에는 시의적절한 책략이었다.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게 법을 집행하던 지배자(레미로 데 오르코)가 사라지자 로마냐 사람들의 불만은 눈 녹듯이 사라졌던 것이다. 누가 그자를 그 위치에 앉혀 놓았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말이다. 부하를 앞세워 궂은일을 맡긴 다음 희생양으로 삼아 제거함으로써, 체사레 보르자는 로마냐 지방의 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도 주민들의 지지까지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보르자는 특히 이런 술책에 능했는데, 현실적인 안목을 갖춘 군주의 표본으로서 마키아벨리의 칭송을 받았다.

발렌티노 공작의 전체적인 행적을 보면, 그가 미래의 권력을 위해서 강력한 토대를 구축하는 데에 성공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생 군주에게 제공할 만한 모범적인 지침으로 그의 활동을 예시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기 때문에, 그의 행적을 논의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연출의 중요성

이익 지향적 행동원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더불어, 마키아벨리는 정치가라면 마땅히 “외양(appearance)”에 신경 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온화하고 관대한 성품, 자비로움과 신의, 경건한 태도와 강직한 마음가짐과 같은 미덕을 실제로 갖추고 있다고 해서 현명한 군주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미덕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 점을 깨닫지 못한 채 상술한 미덕을 배양하는 데에만 열중하는 군주는 오히려 권력을 상실할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경고였다.

왜일까? 마키아벨리가 사용한 “외양”이라는 표현의 현대적인 의미는 “연출된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선전과 기만은 두 가지 이유에 의해 정당화된다. 첫째, 정치적 형세는 변화무쌍하여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치가가 누구나 알고 있는 도덕률에 의해 행동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부담하는 일이다. 자신의 언행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여 적들에게 권력을 탈취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둘째,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군주가 다스려야 할 신민들은 대부분 “근시안적 이익에만 몰두하는 인간들”이다. 사람들에게는 눈앞의 득실이 중요할 뿐, 그들 위에 군림하는 통치자의 심성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일은 안중에도 없다. 『군주론』의 18장을 참고하자.

군주를 대면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지극히 자비롭고 신의가 있으며 정직하고 인간적이며 경건한 것처럼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경건한 것처럼 보여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손으로 만져보고 판단하기보다는 눈으로 보고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볼 수는 있지만,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밖으로 드러낸 외양을 볼 수 있는 반면에 당신이 진실로 어떤 사람인가를 직접 경험으로 알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군주가 전쟁에서 이기고 국가를 보존하면, 그 수단은 모든 사람에 의해서 항상 명예롭고 찬양받을 만한 것으로 판단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은 외양과 결과에 감명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사람들은 대다수가 보통 사람들일 뿐입니다.

마키아벨리의 생각에 따르면, 정치는 인위적으로 조성된 무대 위에서 행해지는 연극과 다를 바 없다. 현대적 형태의 대의민주주의 정체 하에서도 이러한 은유는 여전히 유효하다. 정치가는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이며, 국민은 무대 아래 먼발치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배우들의 연기에 열광하는 청중인 것이다. 청중의 카타르시스를 유발하는 것은 정교하게 의도된 연기이지,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다.

왜 마키아벨리는 그런 주장을 했을까

이상의 내용은 마키아벨리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었는지를 잘 드러낼지는 몰라도, 그의 도덕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생각을 갖도록 만들기에 충분할 것이다. 실제로 마키아벨리를 노회한 책략가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이는 오해이다. 몇몇 부분만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것만큼이나 치명적인 오류는 없는데,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 중 자칫 비도덕적인 것으로 치부될 만한 요소들은 사실 더 큰 차원의 선(善)을 지향한다.

우선 짚고 넘어갈 점은 마키아벨리 역시 윤리와 비윤리의 경계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군주론』 18장의 도입부를 이렇게 시작한다.

군주가 신의를 지키며 기만책을 쓰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칭송받을 만한 일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와 도덕의 분리를 천명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가가 윤리적으로 무감각한 괴물이 되어도 좋다는 주장을 하지는 않았다. 그의 기본적인 입장은 권력의 획득 및 유지를 위해서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으로, 그러다 보면 부득이하게 냉혹한 수단을 취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었다. 달리 말하면, 군주는 선과 악 중 하나를 선택하는 상황 외에도 악과 차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도 얼마든지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 본인의 표현대로 “과장된 구절이나 고상하고 화려한 단어, 그리고 그 어떤 다른 수식이나 외양상의 장식을 하지 않은 채로” 그토록 솔직하게 자신의 현실주의적 색채를 그대로 드러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적 연출의 중요성을 그렇게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당대인들의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무런 윤색 없이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다니, 의아하지 않은가?

이에 대한 답은 앞서 언급한 대로 당시 이탈리아가 처한 상황을 생각해보면 얻을 수 있다. 마키아벨리가 내우외환의 위기로 바람 잘 날 없는 이탈리아의 현실을 염려하고 있었다는 점은 『군주론』 26장의 내용을 통해 눈치챌 수 있다.

모세의 출중한 역량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 예속되어야 했고, 키루스의 위대한 정신이 드러나기 위해서 페르시아인들은 메디아인들에게 억눌려 있어야 했으며, 테세우스의 탁월함을 과시하기 위해서 아테네인들은 지리멸렬한 상태에 있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 출중한 이탈리아인의 역량이 드러나기 위해서, 이탈리아는 현재처럼 절망적인 상황에 봉착해야 했습니다. 이탈리아인들은 이스라엘인들보다 더 예속되어 있고, 페르시아인들보다 더 억압받고 있으며, 아테네인들보다 더 지리멸렬해 있는 데다가 인정받는 지도자도 없고, 질서나 안정도 없으며, 짓밟히고, 약탈당하고, 갈기갈기 찢기고, 유린당하여, 한마디로 완전히 황폐한 상황에 있습니다.

분열된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정치적 안정을 가져다줄 군주의 등장이야말로 마키아벨리가 바라는 것이었다. 『군주론』에서 엿보이는 사유와 통찰은 바로 그 영웅에게 헌정하기 위한 마키아벨리의 노력이었다.

군주론을 읽을 때

『군주론』은 고전이다. 고전을 읽을 때 우선 유의할 점은, 이 책을 저술한 사람이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생활을 영위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마키아벨리의 시대에는 귀족과 평민의 구분이 명확하였으며, 장창으로 무장한 보병이 전장을 뛰어다니는가 하면, 사람들은 교황의 권위에 아무 불만 없이 복종하였다. 현대인이 이런 광경을 보기 위해서는 TV를 켜서 사극을 시청해야 한다.

저자와 독자 간 시공간의 괴리가 그 정도로 크다면, 굳이 고전을 왜 읽어야 할까? 고전에서 추출할 수 있는 통찰과 사유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유효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겠다. 『군주론』 외에도 『국가』, 『니코마코스 윤리학』, 『논어』, 『도덕경』, 『명상록』, 『정관정요』, 『국부론』 등 무수히 많은 저작들이 현대 사회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수의 대학에서 고전을 읽을 것을 강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군주론』의 경우에는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 중 오늘날에도 귀담아들을 만한 것들을 선별하여 숙지하는 식으로 접근하자. 정치적 연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마키아벨리의 저술 중에서는 현대인이 보아도 수백 년 전 사람의 생각으로 치부하기에는 상당히 놀라운 것들이 많다.

비판적인 이해도 가능하다. 마키아벨리의 견해에서 비판할 만한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예를 들어, 그가 상정한 인간의 행동원리는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다. 사람들은 눈앞의 이익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패색이 짙어졌을 때 일본 정부에 즉각 반기를 들고 어떻게든 미국에 투항할 생각을 가진 일본 국민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묵묵히 시키는 대로 군수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하고, 전쟁터에서 미군과 싸우다가 항복하였던 것이다. 가족 구성원에 대한 애정, 지역 및 국가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 등도 사람들을 움직이는 유인이 된다.

더 공부해보고 싶다면?

① 『국가』(플라톤)

서구 정치사상의 원류는 플라톤에서 기원하였다. 플라톤은 많은 저술을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국가』만큼 그의 철학을 두루 관통하는 저작은 없다. 정치철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는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볼 것을 권한다.


② 『리바이어던』(토마스 홉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곳곳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단상을 선보였지만, 그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하지는 않았다. 인간의 근시안적 속성을 사회조직과 연관하여 최초로 심도 있게 다룬 고전은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이니 참고하기 바란다.


③ 『한비자』(한비)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고전으로, 한비의 생각은 마키아벨리의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양자의 사상을 비교하면서 정리하고 싶은 학생은 이 책을 읽어 볼 것을 권한다. 『한비자』 역시 현대인들이 귀담아들을 만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