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살 수 있을 만큼의 소득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똑같이 지급되는 가상 사회를 상상해 보자. 적어도 두 가지는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회에 남들보다 가난한 사람은 없다. 먹고 싶은 음식이나 사고 싶은 옷을 보고도, 얇은 지갑 때문에 돌아설 일이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 사회에는 남들보다 부유한 사람도 없다. 마음껏 소비할 수 있는 행복이 누구에게나 허락된다. 풍요로움이 평등하게 분배된 그 사회의 다른 이름은 ‘유토피아’일 것이다.

영화 월-E의 한 장면

픽사의 장편 애니메이션 월-E에서는 그런 세상이 피상적으로나마 묘사된다. 초호화 우주 유람선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도 자동화된 로봇 생산 시스템에 의해 공급되는 재화와 서비스를 마음껏 소비한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 없는 생활은 만성 비만 및 골격의 약화를 초래했지만, 그 대신 누구 하나 불평등한 분배로 고통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런 사회는 어디까지나 상상의 산물이며, 실현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 빈부 격차는 고도로 문명화된 인간 사회의 또 다른 일면이다. 매년 유럽 전역에서 생산되는 과일 및 채소의 30%는 오로지 그 모양이 소비자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기되고 있는 데 반해, 한편에서는 영양실조로 신음하는 아프리카 아동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공익광고가 우리의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런 현상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좀 더 구체적인 형태로 질문을 바꿔 보자 : 왜 누군가는 부유하고, 누군가는 가난할까?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은 이 문제를 거시적인 시각에서 곱씹어볼 만한 저서를 남겼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제목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경제적 불평등은 인간 집단의 규모를 가리지 않고 존재하지만, 평범한 개인이 일생 동안 직면하는 경제적 환경은 대부분 국가 단위에서 결정된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한국인의 생활 수준은 일반적인 방글라데시인의 그것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빈부의 문제를 논할 때, 국경은 매우 중요한 경계선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범용성이다. 사회과학적 이론을 인문학적 사례로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호 이질적인 영역들을 어설프게 접붙이면 키메라가 될 뿐이지만,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들은 비교적 능수능란한 솜씨를 선보였다. 인문계열 학생이라면 분야를 막론하고 탐독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왜 그런지 살펴보도록 하자.

2.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 정치 · 경제 · 역사의 하모니

2-1.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주제의식

2017년 기준 구매력평가(Purchase Power Parity) 기준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8,260달러, 싱가포르의 1인당 국민소득은 90,570달러로 집계되었다. 구매력평가 기준 국민소득은 전 세계 물가와 환율이 동등하다는 가정하에 상품을 실질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수치이므로, 일반적인 싱가포르인은 일반적인 한국인보다 2.4배 정도 부유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결론을 얻는다. 이런 차이는 왜 생겼을까?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 특정 시점의 경제주체가 직면하는 경제 환경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과거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경제적 상황이 내외 변수의 영향으로 변화하면서 현재의 상태로 귀결된 것이다. 수학에 익숙한 학생이라면 연속함수(continuous function)가 정의될 조건을 생각해 보자. 정의역의 모든 원소 각각에 대해 함숫값이 정의되고, 그와 일치하는 극한값이 존재하는 함수의 그래프는 끊어짐 없이 연속적인 형태로 그려진다. 마찬가지로, 현존하는 한 나라의 경제는 연속적으로 변화한다.

이전의 학자들이 그랬듯이 애쓰모글루와 로빈슨 역시 이 점에 착안했을 것이므로, ‘경제성장의 역사적 경로를 추적한다’는 아이디어가 이 책 곳곳에서 관찰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중요한 것은 무슨 변수가 그러한 경로를 형성하였는가인데, 이 책의 저자들은 ‘제도(instituion)’야말로 국가 간 경제성장의 편차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라고 주장한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논지는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다.

(1) 사유재산권, 거래 관행 및 법규, 조세체계, 고등교육과정 등의 경제적 제도는 그 나라 국민에게 제공되는 경제적 유인(incentive)을 좌우한다.

(2) 경제적 제도가 포용적일수록 더 높은 수준의 경제적 유인을 제공한다.

(3) 정치 권력의 배분 정도, 사회집단의 다양성, 사회정책 결정에 대한 국민의 접근 가능성 등과 관련된 정치적 제도는 그 나라 정치가에게 제공되는 정치적 유인을 좌우한다.

(4) 정치적 제도가 포용적일수록 권력을 독점하려는 유인을 감소시킨다.

(5) 경제 제도와 정치 제도는 상호작용하며, 서로 비슷한 방향으로 동조화되는 경향이 있다.

(6) 국가 간 제도의 차이가 결정적 분기점에 직면하면, 우연히 발생하는 역사적 요인의 영향을 받아 큰 폭의 경제성장 격차를 유발한다.

요약하면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관대한 제도가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첫째, 비판적 사고에 익숙한 학생이라면 이러한 주장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유재산권의 보장 유무를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새로운 농법과 농기구를 실험해 볼 만한 농부는 자신이 일하여 얻은 수확 전부를 하루아침에 탐관오리에게 빼앗길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수확을 고스란히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론은 일견 당연하다. 700페이지나 할애해서 당연한 얘기를 길게 늘어놓을 필요가 있는가?

물론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그런 평범한 책은 아니다.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은 이 책을 통해 두 가지 시도를 하였는데, 기존 경제학자들의 관심 밖에 있던 ‘정치 제도’를 논의의 대상으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제도 분석의 시점을 한정된 시간대에 국한하지 않고 인류 역사 전반으로 확대하였다. 이를 통해 정치 제도가 경제 제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줄 뿐 아니라 국가마다 상이한 제도 변천의 역사적 축적 과정이 어떻게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입증하고자 하였다.

둘째, 국가 간 빈부 격차가 존재하는 이유는 경제성장론의 오랜 논점이므로,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견해들이 이미 많이 나온 상태이다. 독자들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주장에 수긍하도록 하려면 이와 경합하는 다른 이론들의 현실 설명력이 그만큼 떨어지는 이유를 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은 2장에서 이러한 작업을 수행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읽어본 바 있는 학생이라면 특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이아몬드의 지리적 위치 가설도 통렬한 비판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그런데도 다이아몬드가 이 책에 찬사를 아끼지 않은 것을 보면, 미국 학계의 문화가 얼마나 포용적인지를 짐작케 한다).

종합하면, 이 책의 문제의식은 당연히 여겨져 오던 것의 심층적 재발견 및 기존 이론들의 맹점을 포착하는 것 모두를 겨냥하고 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읽다 보면, 창의성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이 아니라 종이 한 장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2-2. 높은 가독성 및 풍부한 사례 제시

평소 독서를 즐기는 학생이 아니라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두께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방대한 분량을 감안할 때 저자들이 이 책을 매우 단순하게 구성했다는 점은 칭찬할 만하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논지 전개 형식은 길 가던 초등학생 아무나 붙잡고 설명해도 이해시킬 수 있을 만큼 쉽다. 저자들의 견해를 도입부에 제시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사례들을 책 전반에 걸쳐 소개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핵심적인 논지를 깨우쳤다면 그 뒤의 내용은 술술 읽어나갈 수 있다.

이러한 구성을 응용하면 시간이 부족한 학생들도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엿보이는 통찰에 접근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두괄식으로 집필된 책이 갖는 한 가지 이점은, 어느 정도 발췌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뿌리와 줄기에 해당하는 내용만 빠르게 읽고, 가지에 해당하는 내용을 취사선택해서 읽으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경우, 3장부터 14장까지의 내용 대부분은 핵심 논지의 연결고리들을 매끄럽게 다듬는 사례들로 채워져 있다. 물론 이렇게 책을 읽으면 전체적인 흐름 중 놓치는 부분이 발생하기 때문에 권하지는 않는다.

이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해하기 쉬운 사례들을 곳곳에 배치했다는 점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국가 간 경제성장의 편차가 존재하는 이유를 가독성 있는 줄글로 풀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이 책 어디에도 복잡한 경제모형이나 통계 분석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 빈자리를 메우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명멸해 갔던 여러 나라들의 성장, 그리고 쇠퇴의 이야기다. 단언컨대 거시경제에 대해 전혀 모르는 학생이라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분량에 비해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읽히는 책인데, 가장 큰 이유는 저자들이 다양한 국가의 사례를 골고루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과서에 흔히 등장하는 영국, 프랑스,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외에도 멕시코, 브라질, 콜롬비아, 아르헨티나(이상 중남미), 콩고, 시에라리온, 짐바브웨, 남아프리카공화국, 보츠와나, 이집트(이상 아프리카), 에스파냐, 오스트리아-헝가리(이상 유럽), 우즈베키스탄(중앙아시아) 등 다른 책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사례들이 다채롭게 제시된다.

3. 이 책을 읽을 때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의 통찰이 경제, 정치, 역사 등 다방면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는 점은 상술한 바 있다. 인문계열 학생들에게 두루 읽어볼 것을 권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을 때에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단연 주제의식이며, 저자들의 논지를 한국의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은 기술혁신으로 인한 창조적 파괴가 필연적으로 사회 갈등을 수반한다고 본다. 우리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를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카풀(Carpool)서비스 출시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바로 그것이다.

카풀은 기존에 없었던 모바일 플랫폼의 존재에 크게 의존하므로, 기술혁신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사업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폰 앱을 활용한 카풀의 이점은 적지 않다. 차량 소유주는 자신의 차량을 주차장에 놀려 두는 대신 추가적인 수입을 얻는다. 차량을 이용하는 승객은 자신이 원하는 시각에 저렴한 가격으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자가 차량 보유의 유인이 감소하므로, 교통체증이 완화되고 대기 질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개발 중인 자율주행자동차가 상용화되어 카풀 모델과 결합될 경우에는 도시 전체적으로 필요한 주차 면적이 크게 감소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쾌적한 생활이 가능해질 것이다.

유감스럽지만 카풀이 야기하는 파괴적 효과도 있다. 카풀이 대체하는 대중교통수단, 특히 택시 산업의 수익성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경우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택시 기사도 분명 있을 것이다. 카풀이 활성화될수록 잠재적 고객들을 잃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야말로 택시 기사들을 강경 투쟁에 나서도록 부추기는 이유가 된다. 카풀 사업을 추진하던 카카오모빌리티는 2019년 1월 15일 카풀 시범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우리는 위 사례로부터 기술혁신이 초래하는 산업부문의 재편 및 이해관계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 갈등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기간 동안 있었던 산업화 및 민주화 과정 역시 이러한 틀에서 설명할 수 있다. 이 책에서도 직접적으로 다뤄진 바 있으니 참고하도록 하자. 이처럼 구체적인 사회 현상과 연관하여 책의 내용을 적용하고, 생각을 정리해 둘 것을 권한다. 구술면접 또는 논술 답안 작성 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그 외에도 이 책에서 폭넓게 소개된 역사적 에피소드들을 눈여겨보도록 하자. 다원적인 정치문화가 사회 전반에 미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논술할 때 보츠와나의 경제성장만큼 극적인 논거는 없을 것이다. 근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국가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았다면, 중앙정부의 권위가 형해화된 채 지역마다 자체적 무장을 갖춘 세력이 난립하는 소말리아나 콜롬비아의 상황을 떠올려 보면 된다.

4.더 공부해보고 싶다면?

① 『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에릭 라이너트)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의 견해가 다소 원론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느끼는 학생도 있을 수 있다. 경제성장을 결정하는 요인이 제도의 역사적 변천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지금 당장 우리가 성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음을 자인하는 것과 같다. 과거의 궤적을 따라 변화해 온 제도적 환경을 일거에 뒤엎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했다면, 노르웨이 경제학자 에릭 라이너트가 집필한 이 책을 읽어보도록 하자. 이 책에서는 국가 간 빈부 격차의 이유를 보다 구조적인 차원에서 파헤친다.

②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최연혁)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지만 사실 빈부의 문제를 논할 때 ‘성장’의 측면에서만 생각하는 것은, ‘분배’라는 또 하나 중요한 측면을 간과하는 것이다. 작년보다 큰 수확을 얻었더라도, 내 손에 돌아오는 양이 줄었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 책은 그러한 관점에서 국가와 정부의 바람직한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③ 『정치학 : 현대정치의 이론과 실천』(앤드류 헤이우드)

: 기본적인 정치 제도의 골격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참고하도록 하자. 헤이우드의 책은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그 내용 역시 명성에 걸맞게 매우 유용하다. 다만, 고등학생이 처음 읽기에는 어려울 수 있으니 궁금한 내용에 한하여 관련된 부분을 조금씩 읽어보는 수준으로 만족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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