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1992년에 번역되어 처음 출간되었지만, 정작 청소년들 사이에서 붐이 일었던 것은 서울대 수시를 지원하는 학생들이 학생부의 독서활동란에 가장 많이 기록한 책으로 꼽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였다. 2010년 전후로 시작되어 2010년대 초반에 크게 유행을 했다가 2015년 쯤에는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학생들이 많이 읽고 학생부에 기록했다. 그런데 『이기적 유전자』가 최근에 다시 유행하고 있다. 그것은 JTBC의 드라마 「스카이 캐슬」 때문이다. 주남대학교의 교수들만이 살 수 있는 궁궐 같은 저택으로 이루어진 단지에서 로스쿨 교수인 차교수의 주도 하에 학생들의 학생부 독서활동을 관리하기 위한 독서모임 ‘옴팔로스’에서 다루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서울의대를 목표로 공부하는 예서라는 아이와 차교수의 쌍둥이 아들 둘이 논쟁적인 토론을 한다.

사진 출처: 스카이캐슬 1화

예서: 유기체는 그저 로봇에 불과하며, 유전자 보존과 다음 세대를 위해 이기적인 태도로 존재해야만 합니다. 전 정말로 인간에 대한 통찰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항상 1등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제 생각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제 부모님으로부터 아주 아주 훌륭한 유전자를 물려받았습니다. 빠른 두뇌 회전, 뚜렷한 목표의식, 절대 지지 않는 승부욕. 앞으로도 저는 제 유전자의 본능, 다시 말해 1등을 위해 사력을 다하는 이기적인 본능에 충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서준(쌍둥이 형): 유전자가 이기적이라 해서 인간도 이기적이라는 게 과연 맞는 말일까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다 대신 죽는 사람도 있잖아요.

예서: 죽을 걸 예측했겠어요? 칭찬받을 욕심이 앞섰겠죠.

기준(쌍둥이 동생): 인간만이 유전자의 이기성을 극복하고 대항할 수 있다잖아요. 제가 볼 때 이게 바로 이 책의 핵심인 것 같은데 제대로 읽은 게 맞습니까?

예서: 기준님이야말로 이기적이라는 단어에 편견을 갖고 계신 거 아닙니까? 순수하게 이타적인 행위는 자연계 어디에서도…….

고등학생들이 저 정도 토론을 했다면 상당히 책을 잘 읽은 것이다. 그러나 예서, 기준, 서준 모두 정확히 읽은 것 같지는 않다.

먼저, 기준이부터 시작하자. 기준이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다 대신 죽는 이타적인 사람도 있다고 말한다. 사실 이것이 도킨스와 같은 동물행동학자들의 의문이다. 자연계에서 생물들은 이기적인 경쟁만을 하는 게 아니라 협력적인 행동을 한다. 대표적으로 대형 물고기와 작은 청소어의 상리공생, 흡혈박쥐들의 잉여 피 주고받기 등이 모두 호혜적인(reciprocal) 이타적 행동들이다. 우리 인간도 타인을 돕는 도덕 행위를 한다. 자연에서 나타나는 이런 현상들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이 바로 『이기적 유전자』의 문제의식이다.

모든 동물의 생존 본능은 자연적이다. 우리가 ‘본능’이라고 하는 것은 자연적 사실(fact)을 의미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생존을 추구한다. 최상의 이기성은 목숨을 보존하는 것이다. 생존에 대한 욕구는 모든 생물들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욕구이고 생물들의 다양한 행동들은 생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바로 이기적 특징을 띤다. 도킨스는 이러한 이기적 생존을 개체나 종이 아닌 유전자로 설명한다. 그래서 ‘유전자는 이기적이다’는 주장을 한다. 유전자는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제1의 지상 명령으로 삼고 있다.

생물이 지니고 있는 특징이나 행태는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다윈이 관찰한 핀치새의 다양한 부리 형태, 수컷 공작의 화려한 깃털, 인간의 눈 색깔 등과 같은 특징들은 유전자가 결정한다. 이런 특징을 ‘형질’이라 부른다. 따라서 모든 생물들은 유전자의 명령에 의해 조립된 기계에 불과하다. 예서는 이를 ‘유기체는 로봇에 불과하다’고 한 것이고, 도킨스가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들이 유전자에 의해 프로그램된 생존기계라고 한 말을 다시 말한 것이다.

이제 여기에서 틈새가 생긴다. 그것은 이기적인 유전자에 의해 조립된 생존 기계들이 어떻게 겉으로 드러나는 행태에서는 이타적인 모습을 띠게 된 것일까? 다윈이 모든 생물들이 생존 경쟁을 통해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된다고 했을 때, 이 말의 한 가지 전제는 경쟁은 이기적인 반면 협력은 이타적이라는 것이다. 이를 도킨스 식의 문제로 바꿔 말하면, ‘이기적인 유전자의 명령에 따르는 인간이 어떻게 이타적인가?’라고 할 수 있다. 현상적으로 볼 때, 즉 자연적 사실로 볼 때 생물들은 이타적 행동을 하는데,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가 문제인 것이다.

도킨스는 이에 대한 답을 로버트 트리버스와 같은 학자들의 연구에서 얻는다. 답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 호혜적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의 메커니즘 때문이다. ‘reciprocal’이라는 단어는 ‘같은 방식으로 돌려주는’이라는 뜻이다. 이를 우리말로 ‘호혜적’이라 번역한 것은 혜택을 서로 주고받기 때문이다. 생물은 호혜적 이타주의를 통해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이를 풀어가는 데에서 이용되는 것이 경제학에서 제시하는 ‘죄수의 딜레마(the prisoner’s dilemma)’이다. 경제학적 인간 모델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극대화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합리적 이익 추구자로서의 인간이 범죄를 공모하여 체포되었을 때 자백하면 감형을 시켜주고, 침묵을 지키면 감형이 없다고 할 때 자신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을 훼손하는 결과, 즉 불합리한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 바로 죄수의 딜레마이다.

범죄 갱단의 두 명이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각 범죄자는 서로 어떤 대화도 할 수 없이 독방에 갇혀 있다. 경찰은 그들의 범죄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경찰은 그들에게 징역 1년 형을 계획하고 있다. 그런데 경찰은 각 죄수에게 협상을 제안한다. 각 죄수는 서로를 배신하여 범죄에 대해 자백을 하거나 서로 협력하여 침묵을 할 수 있다. 죄수 A와 B가 서로를 배신하여 둘 모두 자백한다면, 그들 각각은 모두 3년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A가 B를 배신하여 자백하고, B는 협력하여 침묵한다면, A는 석방될 것이고, B는 5년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B가 A를 배신하여 자백하고, A는 협력하여 침묵한다면, B는 석방될 것이고, A는 5년 형에 처해질 것이다. 만일 A와 B 모두가 침묵한다면, 그들 모두는 징역 1년형에 처해진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공범인 A와 B는 협력이라는 침묵(둘 모두 1년형)보다는 자백(둘 모두 3년형)을 선택하게 된다. 이 경우 둘의 이익은 극대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익이 작아진다. 둘 모두 1년형이라는 더 좋은 결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자백)을 하기 때문에 3년형을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공범들이 상호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서로를 신뢰하고 침묵을 지키는 협력을 해야 한다. 물론 그러한 협력을 위한 한 가지 가정이 있다. 위와 같은 게임이 반복된다는 가정이다. 우리는 평생을 통해 타자와 지속해서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그러한 가정은 현실적이다.

게임이 반복될 때 항상 이기적이기만 한 개체들과 항상 이타적이기만 한 개체들만 존재한다면, 게임에서의 승자는 이기적인 개체들이다. 그러나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대우해 주느냐에 맞춰서 대응하는 원한파가 있다면, 이기적이기만한 개체들은 생존에 어려움을 겪는다. 원한파는 소위 tit-for-tat 전략, 즉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을 취하는데, 자신에게 협력한 개체들에게는 협력을 해주고, 협력을 하지 않은 개체들에게는 협력을 하지 않는 전략을 취한다. 이 세 유형의 집단이 섞여 있을 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을 취하는 개체들은 이타적인 개체들과 협력을 주고받아 생존과 번식을 하게 되지만, 이기적이기만 한 개체들은 도움을 받지 못해 도태되고 만다. 그래서 유전자는 이기적이라 하더라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give-and-take 전략을 취하도록 진화되면서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이 협력을 추구하는 집단이 된 것이다.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말하고 싶은 바가 바로 이것이다. 동물들뿐 아니라 인간은 모두 이기적 유전자에 의해 생존과 번식을 위한 기계로 프로그램되어 있다. 그러나 유전자는 동물들이 이기적인 행동을 하도록 직접 명령을 내리진 않는다. 만일 그랬다면, 죄수의 딜레마에서 보았듯이 오히려 공멸의 길을 갔을 것이다. 오히려 이기적 유전자는 이기적 증식을 위해 이타적 행동을 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유전자는 오랜 진화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존 비법을 이타적 협력에서 찾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1등을 위해 사력을 다하는 이기적인 본능에 충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예서는 도킨스의 책을 오해한 것이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사회생물학(sociobiology)이라 불린다. 사회생물학은 간단히 말해 생물학을 통해 사회를 설명하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유한다는 인식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생각이지만, 진화론을 배경으로 한 생물학과 유전학의 발달로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진화론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사회생물학은 이러한 동물의 행태 연구를 통해 인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러 사회생물학자들이 있지만, 특히 도킨스는 자연 선택이 집단이나 종의 수준에서가 아니라 유전자의 수준에서 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도킨스가 시간 지연을 비유로 들어 뇌의 진화를 설명하기도 하는데, 신경의 발달에 대한 뇌과학의 연구가 더욱 진척된다면 인간의 본성을 더욱 ‘그럴 듯하게’ 설명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명순
개논비연구소 대표
서울대학교 철학과 학사 석사
서울대학교 철학과 박사 수료
Boston University Visiting Schol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