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정의하는 수많은 단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수험생들에게 가장 와 닿는 단어는 ‘학벌사회’가 아닐까 합니다. 어느 대학, 어느 과를 입학하느냐는 12년간의 노력을 평가받는 성적표임과 동시에, 앞으로의 삶을 보장하는 보증수표라는 기대가 한껏 담겨있습니다. 소위 명문대학교를 입학하면 개인에게 좋은 미래가 보장된다는, 수험생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런 ‘환상’들을 통해 우리는 대한민국 사회가 학벌사회라는 증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는 왜 학벌이 좋은 미래를 보증하는 것이며, 누군가를 평가할 때 학벌을 빼놓을 수 없는 것일까요?

학벌을 보는 이유는 사실 매우 간단합니다.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학벌 혹은 성적이 사람들의 인생에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보통 상급 학교에 진학하거나 직업을 찾는 경우입니다. 당연하게도 좋은 학교나 좋은 직장은 가고 싶은 사람은 많을 수밖에 없죠. 하지만 학교나 회사는 선발과정에 쏟을 수 있는 시간과 비용에 한계가 있습니다. 좋은 학교와 회사일수록 인재 선발에 노력을 기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한정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나름 공신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학력과 성적이라는 지표에 의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선발 방법은 따로 있을 겁니다. 예를 들면 합숙면접이 있습니다. 지원자들과 평가자들이 일정 기간 함께 합숙을 하면서 주어진 과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관찰하여 평가하는 것입니다. 학부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지원자들이랑 한 시간 정도만 앉아서 대화해 볼 시간만 있어도 수능이니 내신이니 그런 거 볼 필요 없다.’ 개인적으로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의 경우를 사례로 들자면, 올해 컨설팅 팀에서 함께 일할 조교를 선발하기 위해 인터뷰했던 지원자만 100명에 가깝습니다. 기업이나 대학 등 다른 경우와 달리 저는 다행히 시간도 많았고 일 년에 겨우 두 명 정도만을 채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원자 인터뷰에 투자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대형 로펌, 컨설팅회사와 같이 일 년에 극소수의 인원을 선발하고 선발된 인력이 해당 조직의 핵심 경쟁력인 경우에도 인턴기간을 활용한다든지 면접을 수차례에 걸쳐 실시하는 등 시간과 비용을 충분히 투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우엔 그렇지 않습니다. 수 십대의 1의 경쟁률은 기본이고 수 백대 1의 경쟁률을 찍는 경우가 많습니다. 뽑는 인원도 수 백, 수 천 명이기 때문에 한 지원자를 오랜시간동안 몇번 씩 만나면서 역량을 평가할 방법이 없습니다. 몇 년 전 삼성에서 대학 별로 인원을 할당해서 총장이 추천하라는 제도를 추진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평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어떠한 문제의식에서 이러한 제도를 추진했는지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삼성의 이런 새로운 시도는 많은 사회적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에 아직도 대부분의 대기업은 서류 등으로 인원을 1차적으로 거르고, 인적성평가(필기시험)와 면접, 토론 등의 방법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고 있습니다.

대학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시는 수능 점수를 토대로 평가하기 때문에 다를 수 있지만, 수시는 기업의 선발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D외고 내신 4.5인 학생과 일반고 내신 1.5인 학생 중에 누가 더 학업능력이 뛰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대학들은 입학생 중에 위에 언급한 수치와 비슷한 내신을 가졌던 학생들이 대학에서 어느 정도 수학능력을 보였는가를 참고하여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시 전형에서 수능최저등급을 반영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시간이 없어 지원자의 역량을 충분히 검증할 수 없기에 갖춰 놓는 안전장치입니다.

요즘 경제가 안 좋아서 그런지 올해 유난히 로스쿨 진학시의 학교를 보는지, 어느 학과가 유리한지, 취업할 때 특정학과가 메리트가 있는 지와 같은 질문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상대방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분명합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 상급학교에서 선발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두 요소는 수학능력과 그 학생을 가르쳐서 시장에 내놓았을 때 경쟁력이 있을 지입니다. 기업의 경우에는 분명하게 문제해결력입니다. 모든 스펙은 수학능력, 경쟁력, 문제해결력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로스쿨 진학 시 00학과가 메리트가 있나요? 당연히 없습니다. 뽑는 사람 입장에서 별로 중요하게 생각 안 합니다. 이 학생이 와서 공부를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지 학부에서 뭘 배웠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학벌이 중요한가요? 당연히 고려할 것입니다. 리트와 학점으로 비슷한 정량적 점수가 나온 경우, 뽑는 사람입장에선 당연히 학벌이 좋은 학교를 다닌 학생이 학업능력이 우수하다고 평가할 것 같습니다.

취업과 관련하여 인사담당자분들과 얘기해보면 회사에서는 크게 공대냐 인문계냐는 투입할 수 있는 직렬의 구분이 있기 때문에 차이가 있지만 같은 인문계 내에서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일부 직렬의 경우 경영적 지식이 필요해서 지원자체에서 제한을 두는 경우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학교에 같은 학점이면 비슷하다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선발 방식은 흙 속의 진주를 놓칠 수 있는 위험이 분명히 있습니다. 제 주변에만 해도 학교와 상관없이 개인의 능력이 뛰어난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선발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있을 지 없을지 모르는 진주 찾겠다고 흙을 다 뒤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따라서 학벌을 보는 이유는 시간, 즉 효율성 때문이라고 다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요즘 지원 학과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합격가능성은 다른 맥락의 문제이니 차치하고, 본인의 적성과 흥미에 맞지도 않는데 단순히 취업에 유리하거나, 본인 생각에 무언가를 하는데 유리할 것 같아서 과를 선택하는 학생을 그동안 수없이 보았습니다. 진학, 취업 시에 유불리는 아주 미미한 것이고 4년간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함께할 전공은 삶의 질과 대학생활에 아주 큰 차이를 만듭니다. 3월이 지났으니 자신이 어느정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지는 대략 파악하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선적으로 그 학교에서 본인이 스스로 원하는 과를 선택하시되, 개인적인 능력이나 문제해결력을 보여줄 수 있는 지표들을 학교생활 중에 개발하시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하는 조언을 드리면서 글을 마무리해봅니다.

-다원입시연구소 이상일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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